[한마당-이명희] 아이돌의 눈물

입력 2014-09-24 03:30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 눈으로 본 세상, 눈물로 느낀 인생, 모두 소통하고 대중에게 알리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그냥 인간답게, 남자답게 살겠습니다. 제가 괜히 참고 살았습니다. 돌아오는 건, 쓰잘머리 없는 욕설 폭언과 저를 가둬둔 우울증이었거든요.”

아이돌그룹 ‘제국의 아이들(제아)’ 리더 문준영이 며칠 전 트위터에 올린 글의 일부다. 그러면서 그는 자식들이라 했던 9명의 아들들(제아 멤버들)이 코 묻혀가며, 피 묻혀가며 일해 벌어온 수익이 다 어디로 사라졌느냐고 소속사 대표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했다.

문준영은 다음날 소속사인 스타제국 대표와 화해했다면서 트위터에 글을 올렸지만 파문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시나위 신대철은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획사는 갑으로서 제 비용을 투자하고 연예인은 을로서 본인의 재능을 제공한다. 갑의 의무는 미약하고 을의 권리는 모호하게 기술한다”며 “칼을 뽑았으면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한다”고 글을 남겼다.

연예기획사의 갑질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살시도까지 했었다는 그의 말은 충격적이다. ‘노예계약’으로 불릴 정도로 연예기획사들은 스타 지망생들에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한다. 마술사 이은결도 기획사와 수익을 9대 1로 나누는 10년 계약을 해 악몽이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기획사들은 무명의 신인을 발굴해 노래와 춤, 연기 등을 가르치고 훈련시켜 스타로 키워내기까지의 비용이라고 주장하지만 어린 나이의 연예인 지망생들에겐 종속적 계약임이 분명하다.

동방신기 멤버 중 김재중 박유천 김준수 등 3명은 2009년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내 승소했다. 계약기간 13년은 사실상 종신계약이나 마찬가지였다. 동방신기에서 탈퇴한 이들은 JYJ를 결성해 TV 드라마와 뮤지컬에서 활약했지만 SM의 방해로 지상파 방송의 음악프로그램에는 출연하지 못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SM과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에 JYJ의 정당한 활동을 방해하지 말라며 시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인천아시안게임 홍보대사로 활동한 JYJ가 정작 아시안게임 개막식 공연에 참석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인 것을 보면 기획사의 힘이 세긴 센가 보다.

2009년 성상납을 강요받은 탤런트 장자연씨가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연예인 표준계약서와 ‘장자연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화려한 무대 뒤에서 피눈물 흘리는 스타들에겐 무용지물인 것 같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