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분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달걀로 바위를 깬다고 생각하는 분들 있으면 손을 들어주십시오.”
23일 오전 인천아시안게임 메인프레스센터(MPC) 2층 기자회견장. 역도에서 잇달아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엄윤철, 김은국 등 북한 역도 선수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회견이 시작되자 신기록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엄윤철은 답변 대신 기자들에게 되레 질문 공세를 펴는 파격을 선보였다. 엄윤철은 56㎏급 경기에서 대회 첫 세계신기록이자 북한에 첫 금메달을 선사한 북한 역도의 영웅이다.
당연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엄윤철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위대한 김정은 동지께선 ‘달걀로 바위를 깰 수 없지만 달걀에 사상을 더하면 바위를 깰 수 있다’고 말했다”며 “우리는 그런 정신력으로 무장해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애국가를 울리게 된 것”이라며 속사포처럼 발언을 쏟아냈다.
북한은 역도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뒀음에도 경기 후 선수의 의무처럼 관례화돼 있는 기자회견을 외면했다. 지난 20일 엄윤철에 이어 다음날 김은국(62㎏급)이 세계신기록 3개를 세우고도 기자회견장을 찾지 않자 그들을 기다리던 각국 기자들의 비난이 거셌다. 이를 의식한 듯 이날 굳이 MPC를 찾아 기자회견을 자처한 북한 선수단은 작심한 듯 회견장을 마치 사상 선전장으로 활용하는 듯했다.
훈련 중 부상이나 어려움은 없었느냐는 기자들의 편안한 질문에도 김은국은 “훈련 중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위대한 김정은 최고 사령관께서 많은 사랑과 배려를 더해주셨기 때문에 이렇게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답을 내놨다.
북한 선수들은 선수촌 생활의 불편함을 묻는 질문에 북한 통역관과 상의한 뒤 발언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도 보였다. 김은국은 “너무 좋다”고 짧게 답변하고는 “나는 경기를 하러 왔다”며 “그 이상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해 기자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또 평양에서 받게 될 보상에 관한 외신기자의 질문이 나오자 “바라는 게 없고 김정은 원수님께 기쁨을 드리고 전국 인민들께 기쁨과 행복을 드릴 수 있는 게 저희의 행복이며 자랑”이라는 말을 끝으로 기자회견을 서둘러 마쳤다.
북한 역도는 22일까지 진행된 남녀 6종목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를 수확하며 독무대를 이뤘다. 냉전시절부터 역도 강국이던 동구권 국가와 기술 교류를 해오던 북한 역도는 최근 역도에 집중적인 투자를 해왔다. 런던올림픽에서 엄윤철, 김은국과 여자 75㎏급의 임정심이 금메달을 따내자 북한은 이들에게 ‘노력영웅’ 칭호를 내리고 아파트와 승용차를 부상으로 수여했다.
한편 권경상 인천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은 엄윤철과 김은국에게 고급 스포츠 시계를 수여했다.
인천=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
[인천아시안게임] “김정은 가르침 덕분에 세계新 세우고 우승”
입력 2014-09-24 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