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미경 (10) ‘여자대통령 아닌 대통령을…’ 필화로 검사직 사표

입력 2014-09-24 03:20
정미경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리더십에 관한 저서 ‘여자대통령이 아닌 대통령을 꿈꿔라’로 필화 사건을 겪는다.

여성가족부 파견이 결정된 후 여기저기서 ‘대통령 빽’인 것 같다고 수군거렸다. 전에 내게 “정 검사는 (조직생활에서) 끝났다”고 말했던 사람들이었다. ‘하나님 빽’이라고 말해 줄 수도 없고….

‘여성가족부장관 법률자문관’이 파견 정식 명칭이었다. 여성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만드는 일을 법률적으로 돕는 일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여성학 공부도 하게 되었다.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 적을 두고 제대로 하는 공부였다. 그들을 더 잘 돕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판단되었기에 열심히 했다.

주변에서 검사가 여성학을 공부한다며 신기해했다. 그러다가 책을 써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쓴 책이 ‘여자대통령 아닌 대통령을 꿈꿔라’였다.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여자, 남자라는 것을 잊고 오로지 자기가 하는 직역(職域)에 집중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검사면 검사지 왜 여검사라고 하는가, 나는 정미경 검사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검사에게는 때로는 여성적 자질이, 때로는 남성적 자질이 필요했다. 그렇게 때문에 그 검사라는 포지션에 초점을 맞추어 자기 자신을 계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여자검사가 아닌 검사가 되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출판되던 2007년도는 대통령선거가 있던 때라 “제목에 대통령이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책이 팔리지 않는다”는 출판사 직원의 제언에 따라 책 제목을 그렇게 정하게 됐다.

책이 출판되자 또 세상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당시 여성리더의 한분으로 이름을 날리던 강금실 전직 법무부 장관을 분석하면서 ‘마리 앙투아네트’라고 쓴 부분이 문제가 됐다. 검찰 개혁한다며 검찰을 잘 모르는 판사 출신 여성을 검찰조직 수장으로 임명한 것은 애초부터 잘못한 인사였다. 시작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사였음을 지적했던 것이다.

그걸 지적한 나는 결국 사표를 내야 했다. 사람들은 이때도 내게 “끝났다”고 말했다. 속으론 ‘또 시작이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몇 개월 후 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 그것도 선거를 통해서 경기도 수원 권선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여기저기서 대통령이 공천준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아니라고 말하면 겸손한 정미경이라며 칭찬받았다. 그저 웃을 뿐이었다. 또 하나님이 나를 세워주신 것이다.

2008년 4월 국회의원선거에서 당선된 날은 수요일이었다. 오후에 교회에 갔다. 눈을 감고 묵상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입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에 놀랐다.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가 부르는 곳엔 꼭 가겠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여성이 부르는 곳엔 꼭 가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고시공부 할 때 다녔던 서울 신림동의 교회에서 법조인을 상대로 나의 하나님 이야기를 짧게 하게 됐다. 그 뒤로 간증을 하게 되었는데, 간증이 뭔지도 모르고 하나님 이야기를 신나게 했다.

하지만 2012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게 “의원님 의원님” 하면서 잘 보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 나를 쳐다보지 못하고 도망가는 사람들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대놓고 모욕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공천이란 게 그런 거였다.

정치판에선 이렇게 배신을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말을 한다. 누구는 이게 정치라고 말한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배신은 배신인 거다. 사랑하는 제자로부터 배신당한 예수님 생각에 괜히 눈물이 났다. 성경에 다 나타나지 않은 예수님 마음까지 이해가 될 정도였다.

그때 무소속으로 선거에 나가서 떨어졌지만 그래도 내 곁에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그들의 형편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 가정과 그들의 주변에 축복해주시고, 순조롭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래야 어려운 나와 함께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정리=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