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긴 어게인’ 잔잔한 돌풍… 역대 다양성 영화 관객수 2위 기록

입력 2014-09-24 03:31

영화 ‘비긴 어게인’의 기세가 놀랍다. 지난 18일 올 개봉 다양성 영화로는 처음으로 200만 관객을 돌파한데 이어 역대 다양성 영화 순위를 전부 갈아 치울 태세다.

이 영화의 감독은 존 카니. 2006년 개봉해 잔잔한 감동을 줬던 음악 영화 ‘원스’의 그 감독이다.

“음악이 있으면 평범한 일상도 진주처럼 보여” 같은 근사한 대사. 혹은 “하나님, 젊음은 왜 젊은 시절에 낭비돼야 하는 건가요(God, tell us the reason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같은 노래 가사. 지친 대한민국에 이처럼 명대사로, 주옥같은 노래로 감동을 주는 영화 ‘비긴 어게인’. 음악영화를 내세워 다양성 영화 부문에서 새 기록을 쓰는 ‘비긴 어게인’의 인기비결을 짚어봤다.

◇이례적 인기… 어디까지 이어질까=영국인 싱어송라이터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는 남자 친구 데이브(마룬파이브의 보컬 애덤 리바인)가 미국의 유명 제작사에서 음반을 내게 되면서 뉴욕으로 따라오지만 곧 차이게 된다. 실의에 빠진 그녀가 해고된 음반 프로듀서 댄(마크 러팔로)의 눈에 띄게 돼 함께 음반을 만드는 과정이 줄거리다. 대형 음반사와의 노예 계약을 거부하는 두 사람. 그들이 스튜디오를 벗어나 뉴욕 곳곳을 배경으로 야외 녹음작업을 하는 과정은 도발적이면서도 낭만적이다. “이 소음까지도 음악이 될 거야.” 도시의 뒷골목, 건물의 옥상, 강 위의 보트, 비 오는 날 박물관 중정에서 레코딩 작업이 이뤄진다. 음반은 중간 유통 단계를 거치지 않고 SNS를 통해 단돈 1달러에 판매되며 대박을 거두게 된다. 한마디로 루저들의 성공신화다.

지난달 13일 개봉한 ‘비긴 어게인’은 당시 185개 스크린에서 소규모로 상영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 20일 기준 499개 스크린에서 하루 2364회를 상영하는 등 예기치 않은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12일부터 국내 박스오피스 2위 자리도 굳건히 지키는 중이다. 2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현재까지 관객수 248만2411명을 기록하며 다양성 영화 부문 역대 2위 자리를 꿰찼다. 이전 2위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243만3298명)이다. 1위인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2009·293만4409명) 자리도 넘볼 법하다.

수입과 배급을 맡은 판 시네마 관계자는 “초반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로부터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반응이 왔다”며 “SNS를 통해 호응을 얻고 난 뒤 꾸준히 관람객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거둔 기록은 미국에서의 실적도 넘어설 듯하다. 북미 박스오피스 사이트 모조에 따르면 지난 14일을 기준으로 ‘비긴 어게인’의 한국 흥행 수입은 151억1230여만원을 기록, 18일 기준 미국 내 흥행 수입 167억6340여만원을 바짝 따라가고 있다.

◇“서정적 멜로디… 패배의식 젖은 젊은 층엔 카타르시스”=평론가들은 ‘비긴 어게인’이 영화 ‘명량’ ‘군도’ ‘해적’ 등 여름 내내 스크린을 달군 블록버스터 장르에 지친 관객들의 피로감을 파고들며 사랑받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뻔한 로맨스로 빠지지 않고 일에 대한 열정으로 아픔을 이겨내는 과정이 신선하다. 밑바닥을 친 주인공이 이를 극복하며 느끼는 치유를 보여줘 ‘힐링영화’가 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평론가 윤성민씨는 “여주인공 그레타가 홀로서기를 하며 성장하는 과정은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20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로 작용했다”고 평했다.

음악의 힘도 있다. 강씨는 “영화 ‘써니’(2011), ‘건축학 개론’(2012)처럼 서정적인 영화에 음악이라는 요소가 결합될 때 큰 호응을 얻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윤씨는 “영화 ‘겨울왕국’에서 드러났던 음악의 힘이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마룬파이브’를 매개로 다시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마룬파이브는 감성적인 음악 스타일로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 5인조 록 밴드다. 2012년 가수 싸이(본명 박재상·36)의 ‘강남스타일’과 빌보드 차트 경쟁을 벌여 1위 자리를 꿰찼다.

영화 OST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이날 음원사이트 멜론의 ‘차트 100’을 보면 이 영화 OST 11곡 중 10곡이 100위 순위권에 올라있다. 10위권 안에만 두 곡이 포진돼 있는데 영화 OST가 발매된 지 두 달이 넘어섰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현상으로 평가된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