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업 수 가운데 99%, 고용 인원의 88% 비중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보호 및 지원정책은 지난 20여년간 역대 정부에서 끊임없이 유지, 발전되어 왔다.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상생협력을 도모해야 하며, 정부는 약자인 중소기업 편에 서서 지원해야 한다는 등의 논리는 함께 나누는 사회를 지향하는 선진사회의 이상에 부합해 국민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해 보인다. 당장 힘들어하는 중소기업에 손을 내미는 정책들은 일견 따뜻한 정부로서의 참된 역할과 어울리는 것으로 비쳐진다. 이렇게 따뜻한 정부의 손길로 우리 경제의 미래가 보장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한편 불길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과연 현재의 정책체계에서 우리 기업들이 급변하는 세계경제 질서에 대응하며 생존해 나갈 수 있을지, 더 나아가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이 되살아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우리 기업정책이 지향해야 할 철학과 장기적 비전을 다시 한번 짚어보고 그에 적합한 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정책을 도출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성숙기에 접어든 우리 경제는 과거 생산요소의 축적에 의존하는 성장 방식에 한계가 노출되고 있고, 이는 다시 저성장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과거와는 달리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갖춘 창의적인 기업이 끊임없이 시장에 출현해야만 하는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혁신적 기업의 출현과 비효율적 기업의 퇴장이 활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기업정책의 주된 목표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의 중소기업 정책은 대기업-중소기업 간 양극화 현상 앞에서 중소기업들의 생존과 보호에 방점을 두어 왔다. 우리 기업 생태계의 비정상적인 구조를 시정하고자 노력해 온 정부의 고심은 십분 이해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업정책의 정책비전과 방향의 대전환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을 복원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
우선, 중소기업 정책은 보호보다는 기업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와 같은 보호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중소기업의 생존을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나 장기적으로는 기업 및 산업의 경쟁력 저하를 초래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진정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관계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은 소수 대기업에 의해 판로가 점유되어 있는 국내시장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해야 한다. 유럽의 대다수 히든 챔피언 기업들과 같이 국외에서도 통하는 기술개발, 혁신적인 상품개발 등 중소기업 글로벌화 및 경쟁력 강화가 절실하고 이를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 지원정책 수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비효율성과 왜곡이 개선되어야 한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과다하면서도 한편으로 부족하다는 말이 있는 이유는 적절한 곳에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정책금융은 창업초기 및 성장기의 혁신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융통에 주력해야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의 출현에 도움이 될 텐데, 현실은 기업 나이가 10년 이상인 기업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이 40%를 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규모에 따른 세제 및 금융지원 혜택이 과도해 기업의 규모화를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규모보다는 차라리 기업의 나이에 맞추어 초기에 과감한 지원을 하되 지원기간 제한을 두어 지원 수준을 점차 낮추는 방법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외에도 경쟁질서의 확립, 재기시스템의 구축, 창의성 위주의 교육시스템 도입 등 혁신 기업의 출현에 필요한 기업환경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다. 중소기업 정책은 결국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핵심 기업들이 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얼마만큼 적절히 조성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재검토돼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 경제가 저성장 늪에서 벗어날 기회가 열릴 것이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경제시평-박정수] 중소기업정책 방향을 바꿔라
입력 2014-09-24 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