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프랑스 여성과 이야기하다 “한국은 창녀들이 많은 나라 아니냐”라는 말을 들어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인종차별과 편견이 가득한 내용이지만 왜 그런 연상을 하게 됐는지 여러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갔다. 미국이나 호주 등에서 불법 매춘을 하고 있는 한국 여성들 때문인지, 6·25전쟁 이후 미군에게 몸을 팔며 가정을 부양해야 했던 슬픈 역사 때문인지, 혹은 이른바 한류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나 물신숭배의 분위기 때문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나를 포함해 한국 여성을 깔보는 그의 거만한 태도가 내 입을 아예 닫게 했었던 것 같다.
그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문제가 아니라 과연 우리나라가 왜 그런 이미지를 외국인에게 주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그 이후로도 종종 나를 찾아왔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한국인이라는 내 정체성을 다른 나라의 누가 함부로 경멸한다면 마치 내 부모의 이름을 누가 능욕하려 할 때와 비슷한 감정이 생기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너무 초라한 우리 문화산업
문제는 그런 왜곡된 편견을 걷어내기 위해 한국인들, 특히 나같이 이른바 지식인들이나 정치지도자들이 과연 그동안 무엇을 얼마나 노력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참으로 많은 근로자와 기업인들이 터무니없이 열악한 조건에서 몸과 마음을 바쳐 보다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 왔다. 이제는 어디 가든 한국 제품을 쓴다는 사람들을 도처에서 만나게 되었지만 문화 산업은 그에 비해 너무 초라하다. 물론 K팝을 좋아한다는 이들도 많고, 한국 드라마 마니아라고 밝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 그림과 공예, 국악, 건축, 신화 등에 대해 언급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결국 책임은 그동안 한국의 전통문화와 고급문화를 알리는 데 소홀한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전 세계의 대형 박물관 부설 서점을 가보면 중국과 일본의 예술을 소개하는 서적들은 수십 권이 넘게 진열돼 있는데 한국 문화에 관한 서적은 거의 없다. 물론 한국을 알고 싶어하고 책을 사고 싶어하는 이들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십수년 전 일본과 미국 제품으로 도배됐던 전자와 자동차 시장에서 이제는 한국 제품이 대세가 된 기적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한국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서적과 공예품과 음악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해외 학회에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관련된 자료들을 소개하면 호기심과 놀라움이 뒤섞인 반응을 만나게 된다. 내 발표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한국 문화에 대해 너무나 몰랐었기 때문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리라. 몸매를 드러낸 채 성적인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며 군무를 추는 한류 가수들의 모습이 이제는 더 이상 참신하지도 신기하지도 않다. 잠시 경탄의 대상이 될 수는 있겠지만, 대중문화를 즐기는 이들은 특히 빠른 속도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강국 위한 투자 절실
전 세계를 오가며, 또는 아예 그곳에 둥지를 틀고 열심히 살면서, 힘든 와중에도 한국 문화를 알리려 노력하는 젊은이들을 요즘 도처에서 만나게 된다. 그들의 작업과 노력이 힘을 받기 위해서, 특히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국가의 힘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한국 문화를 알리는 출판물들, 기획전, 음악회 등에 지금보다 더 지속적으로 투자할 때다. 거액을 들여 번역 출판한 ‘토지’ 같은 서적들은 외국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당한다. 우리에게는 토지가 가슴에 와닿는 얘기지만 한국 문화를 제대로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왜 이런 책을 번역했는지 수수께끼일 수 있다. 외국의 수요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무조건 돈 들인다고 될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여성들의 몸을 팔아 연명하는 싸구려 국가가 아니라 존경의 마음으로 배우고 싶은 문화강국이 될 날이 빨리 오길 바랄 뿐이다.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
[청사초롱-이나미] 전통·고급문화 더 많이 알려야
입력 2014-09-24 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