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한국 나이 29세는 세대교체가 빠른 여자유도에서 ‘환갑’에 해당하는 나이다. 하지만 ‘왕언니’ 정경미는 은퇴를 선택하는 대신 인생의 새로운 목표인 아시안게임 2연패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 여자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2개 대회 연속 금메달의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정경미는 22일 인천아시안게임 여자유도 78㎏급에서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북한의 설경(24)을 맞아 지도승을 거두고 정상에 올랐다. 이번 대회 첫 결승전 남북 대결로 관심을 모은 경기에서 정경미는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서며 주도권을 잡았다. 경기 중반 지도 하나를 유도한 데 이어 종료 1분10초를 남겨두고 설경에게 지도 하나를 더 안겨주며 승리를 예감했다. 이후 설경의 반격을 효과적으로 차단한 정경미는 우승을 확정,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이어 2연패를 달성했다.
초등학교 때 태권도와 투포환을 하다 TV로 유도 선수들의 멋진 모습을 보고 유도로 전향한 정경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국내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2006 아시아선수권대회 은메달과 2007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을 잇따라 따내며 에이스로 올라섰다. 2008 베이징올림픽 동메달에 이어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선수 생활의 정점을 찍었던 정경미는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1회전 탈락의 충격으로 좌절하기도 했다.
그는 한때 은퇴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다시 한번 도복 끈을 졸라맸다. 하지만 고질적인 허리디스크가 그를 괴롭혔다.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며 국가대표 선발전도 치렀지만 100% 컨디션으로 이번 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부상 때문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면서 “그때마다 나를 이끌어준 서정복 감독님과 황희태 트레이너 등 도와준 분들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울먹였다. 그는 경기가 끝난 직후 서 감독과 부둥켜안고 한동안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내가 대표팀 맏언니여서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었는데,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금메달은 나 혼자 딴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함께 훈련한 여자유도 후배들, 파트너들과 함께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여자유도가 금메달 잔치를 이어간 데 비해 남자유도는 동메달만 3개를 추가해 아쉬움을 남겼다. 여자유도는 정경미를 포함해 개인전에서 금메달 3개를 비롯해 은메달 1개와 동메달 1개를 합쳐 총 5개의 메달을 따내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남자유도는 우승을 기대했던 남자 100㎏급의 조구함(22)을 비롯해 100㎏ 이상급의 김성민(27), 90㎏급의 곽동한(22)이 동메달에 머물렀다. 전날 81㎏급의 김재범이 이번 대회 유일한 남자부 개인전 금메달리스트로 남게 됐다. 남자 대표팀의 개인전 금메달 1개는 역대 아시안게임 최악의 성적이다.
인천=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인천아시안게임] 허리디스크에도 이 악물고 맹훈… ‘왕언니’ 金 메쳤다
입력 2014-09-23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