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떼법 만연’ 사회

입력 2014-09-23 04:29
정부가 추진 중인 각종 개혁 방안에 대한 ‘떼법’ 행위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공무원노조의 한 간부가 22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던 ‘공무원연금 개혁 정책토론회’를 동료 노조원들과 함께 중단시킨 뒤 “연금개혁 해체, 새누리당 해체” 구호를 선창하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지난 18일 국회 의원식당에서 열린 내년도 쌀 시장 개방 관련 당정 간담회장에 농민단체 회원들이 난입해 회의를 중단시킨 모습. 김태형 선임기자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떼법(떼로 몰려다니며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법질서를 위반하는 행위)’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세월호 정국의 해법을 찾지 못해 의회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떼법으로 법치주의까지 흔들리고 있는 형국이다.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는 정치권과 집단이기주의가 결합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한국연금학회가 22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할 예정이던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공무원노조의 저지로 무산됐다. 이번 토론회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하는 새누리당의 요청으로 한국연금학회가 준비했다.

토론회 시작 전부터 공무원노조 지도부와 노조원 500여명이 토론회장을 메웠다. 이들은 앞좌석을 모두 차지하고 “연금개혁 해체” “새누리당 해체”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일부 노조원들은 욕설을 하고 호루라기를 불기도 했다. 구호 중에는 “김무성을 규탄한다”도 있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 18일 “표 떨어지지만 (공무원연금 개혁을) 하긴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학회 소속 사회자와 새누리당 나성린 정책위 부의장 등이 소란 속에서도 토론회를 예정대로 진행하려 했으나 결국 포기했다. 주최 측은 오전 10시27분 토론회 취소를 선언했다. 국민을 위해 국가의 사무를 맡아 보는 공무원들이 국회에서 벌어진 토론회를 무산시켜 충격은 더 컸다.

앞서 지난 18일에는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원 10여명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던 쌀 시장 개방 관련 당정회의에 난입해 계란과 고춧가루를 던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정당한 논의 과정을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떼법 행위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유성진 교수는 “법안을 만들기 위한 논의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집단이기주의로 비쳐질 수 있다”며 “논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신의 요구를 전달하고 다른 이해당사자를 설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국대 법학과 김상겸 교수는 “공무집행 방해나 권리행사 방해죄 등 법규정에 따라 제재를 가할 수 있는데도 정부가 가만히 있으니까 떼법이 습관화됐다”고 진단했다.

정치권이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떼법이 기승을 부린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조성대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특정 집단의 저항이 폭력적으로 표출되는 것은 문제지만 폭력을 수반해서라도 의견을 개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국회가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윤해 전수민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