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은 스스로를 ‘반쪽짜리 국회의원’이라고 했다. 지난 7·30 재·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된 그의 임기는 채 2년이 안 된다. 하지만 정치적 위상은 ‘온쪽짜리’ 국회의원 이상이다. 단박에 새누리당 최고위원직도 꿰찼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선거구제가 채택된 13대 총선(1988년) 이후 새누리당 간판으로 광주·전남에서 유권자의 부름을 받은 유일한 의원이기 때문이다.
그가 극복한 것은 영호남 지역구도만이 아니다. 소지역구도마저 넘어섰다. 인구 3만의 곡성 출신인 그는 인구수가 9배에 이르는 순천 출신 상대후보를 꺾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선거 직전까지 소지역구도는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며 그의 돌풍을 찻잔 속의 태풍으로 과소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그 일을 해냈다. 그래서 그의 당선엔 ‘기적’ ‘이변’ ‘혁명’ 등의 여러 수식어가 붙는다. 그는 “진심이 통했다”고 했다. 이 의원이 인터뷰 내내 되뇐 키워드 또한 ‘진심’이었다. 그에게 ‘진심정현’이란 별명을 붙여주고 싶다. 7·30 재보선 최고 스타를 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당선된 지 두 달 가까이 됐다. 지역구민들이 “잘 뽑았다”고 하는가.
“선거 후 한 달 보름 가운데 35일을 지역민들과 보냈다. ‘우리 마을 생긴 이래 국회의원이 마을에서 간담회를 하고, 자는 것을 처음 봤다’는 주민들이 많다. 그런 부분에서 아주 만족해하고 있다. 그리고 공약을 잘 실천하는지 지켜보겠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선거 때 예산폭탄을 공약했는데 그대로 하려면 1조원이 든다는 얘기가 있다.
“액수는 잘못된 것이다. 그만큼 예산을 끌어오겠다는 얘기다. 방안은 간단하다. 관건은 예산 우선순위와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누가 설득력 있게 호소하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5년간 예결위원을 5번 역임한 진기록을 갖고 있다. 호남 쪽에 여당 의원이 없어 예결위에 많이 들어갔고 예산 확보 방안에 대해서도 다른 의원들에 비해 노하우가 있다.”
-7·30 재보선에서 서울 동작을 출마설이 나돌았었는데 비판여론 때문에 지역구를 바꿨나.
“동작을에 있는 교회에 17년째 다니고 있고 인근 아파트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런 추측이 나온 것 같다. 호남에서 반드시 새누리당 이름으로 국회에 진출하는 것을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와이 낫(why not), 내가 왜 안 되느냐는 거다. 호남에서 태어났고, 누구보다 호남을 잘 알고, 호남에 대한 애정이 강하고, 호남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있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고, 그런 일을 하고 싶은 강렬한 의지를 갖고 있는 내가 무엇 때문에 호남에서 안 되냐는 거냐. 19년 동안 호남에서만 네 번 출마한 것도 이런 것들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호남정치의 부조리와 잘못을 해소하는 것이 내가 정치권에 존재하는 이유다. 호남정치는 물론 대한민국 정치발전에 기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은 호남에서 여야가 함께 존재하는 정치를 회복하는 것이다.”
-영호남 지역구도뿐 아니라 소지역구도도 뛰어넘었다.
“호남에서 새정치연합의 독점·독주·독선 정치를 타파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렬하다. 문제는 대안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적절한 공약을 제시했고, 일하고 싶어 하는 진정성을 제대로 보여줬다. 진심이 통했다고 본다. 대안이 될 수 있는 인물이 나온다면 호남에서도 이제 (새누리당 후보가) 통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이 됐다.”
-우리 정치의 영원한 병폐인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다양한 제도개선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제도를 바꿔 지역구도를 깬다는 건 정도가 아니다. 중대선거구제가 됐든, 석패율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지역구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어떤 선거든 인물선거가 돼야 한다.”
-대구·경북에서도 제2의 이정현이 나올 수 있다고 보나.
“김부겸 후보가 대구시장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은 것은 온 국민이 지역구도를 타파와 개혁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다. 영호남 측면에서 본다면 부산, 울산, 경남도 영남이다. 영남에선 이미 새정치연합 대선주자들이 연달아 나왔고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박원순, 김두관, 문재인, 안철수 주자 등 전부 영남 출신이다. 조경태 의원의 경우 부산에서 3선에 성공했다. 대구에서도 많은 표가 나왔고 이번에 나의 당선으로 지역구도 균열이 확실하게 확인됐다. 어떤 지역에서도 일당독재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기류가 형성됐다고 본다.”
-공직인사에서 지역차별을 금지하는 공무원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실제로 차별이 심한가.
“지·학연 등 인연 위주 인사가 보편화되고 횡행한다면 국론분열의 큰 원인이 된다. 지역차별은 저울로 달 수 없고 자로 잴 수 없는 문제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이 느끼고 있다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비록 선언적이기는 하지만 출신지역이 인사에 있어 고려나 배제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부각시키고 싶었다.”
-최근 호남정치 리더십 부재를 얘기했는데.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전에는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호남 리더십 자체였다. 그러나 DJ는 서거했다. 그렇다면 DJ 이후 호남을 이끌어갈 새로운 목표와 리더십을 정립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DJ를 앞세우면 호남 발전은 요원하다.”
-호남정치의 리더가 되고 싶다는 건지.
“털끝만큼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추석연휴 지역구뿐 아니라 전남 여러 곳을 둘러봤는데.
“여드레 동안 이틀은 지역구에서 보냈고 남은 기간 지역구를 벗어나 이곳저곳을 다녔다. 호남의원 30여명 가운데 유일한 여당 지역구 의원이다 보니 지역구만 관심 가져서는 안 된다. 광주, 전남은 물론 조만간 전북도 방문할 계획이다.”
-다음 도지사 선거를 염두에 둔 행보로 보인다.
“그런 정치 행보와는 무관하다. 유권자들이 주문하는 일을 감당하기에도 벅차다. 다음 행보는 머릿속에서 싹 지웠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충실할 생각이다.”
-새누리당에서 호남출신 당 대표나 대선 후보가 나올 수 있을까.
“너무 빨리 먹는 김칫국일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빨리 올 수도 있다고 본다. 중요한 건 진심이다. 진심이 발현되지 않으면 소용없다. 우선 새누리당이 집권당으로서 호남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데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보다 호남에 두세 배 관심을 쏟는 것이 새누리당이 전국정당이 되는 길이고, 집권당의 도리이다. 내가 중앙당, 조직, 돈 없이 선거를 치렀는데도 승리할 수 있었던 건 진심은 통한다는 확신을 갖고 임했기 때문이다.”
-정치가 실종됐다는 지적을 많이 하는데.
“법과 원칙, 약속, 국민에 대한 기본 도리를 지키지 않은데 원인이 있다. 12대 국회의원 비서로 정치를 시작했는데 19대에 이르기까지 국회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앞선 정치인들의 좋은 면은 본받지 않고 잘못된 행태만 답습한 탓이다. 특히 투쟁의 노예가 되어 있다. 민주화투쟁이 곧 정치였던 시절이 있었으나 시대가 바뀌고 국민의식이 변한 지금도 70∼80년대식 투쟁을 바른 정치로 여기고 있다. 국민 요구에 부응하는 것을 굴종이나 패배로 착각하고 있다. 투쟁의 노예로부터 해방되지 않는 한 지금의 국회 행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국회는 만성병, 유전병에 걸렸다. 병은 자랑하라고 했다. 어디가 아픈지 국민들이 알게 해야 한다. 예산심의, 입법, 지역구 활동 등 의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 후원회와 출판기념회 때 누가 얼마를 내고, 이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또 많은 예산을 들여 간 해외에서 무슨 활동을 하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의원들이 몸가짐을 조심하게 된다. 국회를 먼저 개조하지 않으면 국가 개조는 불가능하다. 의원들이 가장 뻔뻔할 때가 청문회 때다. 자리를 바꿔 의원들이 자기 돈의 쓰임새와 행태에 대해 질문 받았을 때 당당하게 고개 들고 답할 수 있는 의원들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공무원에게 호통치고 서류 던질 때 의원들이 가장 뻔뻔스러워 보인다.”
-꽉 막힌 세월호 정국을 풀려면.
“선거 다음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진도에 갔었다. 실종자 가족들과 나눈 대화 중 ‘우리 애들은 잃었지만 다시는 이런 일 일어나지 않아서 다른 부모는 이런 아픔을 겪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금 한시가 급하다. 하지만 의심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만족을 하든, 안 하든 특별조사위원회와 특별검사 등 기존 시스템과 제도를 우선 가동하고 부족한 게 있으면 시정해나가야지 이렇게 시간을 끄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통 부족을 많이 얘기한다.
“이 세상에 어떤 누구도 완벽하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소통은 시간이 필요하다. 진심과 진정성도 들어 있어야 한다. 소통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당은 얼마나 소통을 잘해서 지지율이 20%도 안 되나. 세월호 참사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 목을 날렸고, 얼마나 많은 조치를 취했나. 법만 제정되면 당장 시행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이 마련돼 있는가. 마련돼 있는 것을 하나도 못하게 하면서 소통 운운하는 것은 시비를 위한 시비다.”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이 남다른데.
“2002년 탄핵과 차떼기 역풍으로 새누리당 지지율이 최하 7%까지 떨어지고, 총선에서 20석도 못 얻는다는 시절, 단 한사람도 호남에서 새누리당으로 출마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유일하게 내가 광주에서 출마했다. 당시 대통령이 비대위원장으로 선거를 이끌 때 호남포기전략을 포기해 달라는 의지를 강하게 전달했다. 그때 대통령이 ‘어쩜 그렇게 말씀을 잘하세요’라며 나를 당 수석부대변인으로 발탁했다. 그때부터 대통령을 정치적 사표로 삼았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의 차이는.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비례대표는 여유가 있으나 지역구 의원은 정부의 축소판이다. 복지, 교육에서부터 아주 작은 마을의 담 무너진 민원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지역민과 소통하고 어울려야 한다.”
이 의원은 부지런하다. 지역구민들과의 밤샘 대화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이 의원은 마을을 돌며 잠을 자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선거에서도 그의 진심이 통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인人터뷰] 13대 총선 이후 새누리당 간판으로 광주·전남서 당선 유일 의원 이정현
입력 2014-09-24 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