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즐겨 부르는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새 570장·통 453장)를 보자. 이 찬송은 부부의 콜라보레이션이 돋보인다. 가사만 읽으면 평화스러워 보이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작사·작곡가의 아픔이 자리한다.
6·25전쟁이 터진 지 3일 후 북한군은 서울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과 강남을 잇는 유일한 다리인 한강대교가 폭파돼 강을 건너지 못해 서울에 고립된 피란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아내 최봉춘은 겁먹지 않았다. 예수님을 믿는 자의 미래는 결국 영원한 행복으로 이어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시편 23편을 되뇌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때 멀리서 배 한 척이 나타났고, 부부는 그 배를 타고 기적처럼 피란길에 올랐다. 전쟁이 끝나고 남편 장수철은 홀로 유학길에 오른다. 형편이 여의치 않아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시카고 무디성경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한다. 어느 날 아내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설레는 마음에 편지를 읽다 그만 목 놓아 울었다. 12살인 큰딸 혜경이가 폐렴으로 사망했다는 거다. 힘겹게 사투를 벌였을 딸과 함께해주지 못한 죄책감에 아버지는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이어진 편지에는 아내의 따뜻한 위로의 시가 실려 있었다.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양/ 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가로/ 나를 늘 인도하여주신다/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 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
고통의 순간도 하나님은 선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신다는 확신을 얻게 된 남편. 그는 아내의 시에 멜로디를 입혔다. 그렇게 부부가 만든 찬송은 그리스도인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메시지로 지금껏 널리 불려지고 있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새 200장·통 235장)을 지은 필립 폴 블리스는 너무 가난했다. 어린 시절 우연히 피아노 소리를 듣고 넋을 놓은 채 연주를 감상했다. 지금은 더러운 맨발에 가난한 형편이지만 음악가의 꿈을 키운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온갖 유혹에 시달리지만 그는 주님이 주신 비전을 위해 단호히 그런 것들을 거절한다. 그리고 마침내 19세 늦은 나이에 음악공부를 시작하고, 여류시인을 만나 결혼도 한다. 그러나 미국 전역을 다니며 찬양 콘서트도 열고 음악을 가르치던 블리스 부부는 전도 집회를 위해 열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사고로 함께 목숨을 잃는다. 블리스는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성경을 읽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이 말씀을 묵상하던 블리스는 영생의 말씀이 귀하고 귀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 찬송을 썼다.
이렇듯 사연이 없는 찬송은 없다. 찬송은 삶을 통해 드리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이고 간증이다. 또 구원을 받은 기쁨의 표현이다. 이 책에는 이들 찬송 외에도 ‘예수 우리 왕이여’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등 65곡의 찬송 ‘뒷이야기’가 실려 있다. 대부분의 작사가들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무너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들을 버티게 하는 힘은 바로 주를 믿는 믿음이었다. 결국 주 안에서 승리하고, 터져 나오는 감격을 찬송으로 만들어 불렀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이런 강한 믿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귀머거리 천재 작곡가 베토벤의 합창에 붙여진 원래 가사 대신 헨리 다이크 교수가 ‘기뻐하며 경배하세’(새 64장·통 13장)를 붙인 사연은 왜 주님을 찬양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상의 환희를 노래하던 베토벤의 합창이 다이크 교수의 영감으로 진정한 환희의 송가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세상의 환희를 초월한 진짜 환희는, 세상이 주는 모든 기쁨을 합한 것보다 뛰어난 영원한 환희입니다. 기쁨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끝없이 만족시키시고, 감격하게 하시며, 환희와 기쁨과 흥분과 평화와 삶의 목적을 주십니다. 우리는 절대자 하나님을 통해서만 진정한 환희를 누릴 수 있습니다.”(17쪽)
믿음의 선배들이 은혜의 찬송을 남겨준 게 고맙다. 그들이 감사하고 감격했던 신앙의 고백을 오늘날 우리가 마음껏 부르면서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사연이 없는 찬송은 없다
입력 2014-09-24 0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