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하지 마세요.” 오달수의 말이다. “한 템포 쉬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보세요.” 이건 남상미의 말이다. 차태현은 “불편해 할지 신선해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슬로우 비디오’는 요즘 영화들과는 많이 다르다. 일단 느리다. 대사도, 음악도, 장면도 느릿느릿하다. 그리고 착하다. 약하고 착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따뜻한 이야기다. 조금 웃기기도 하고 조금 울리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과하지 않다. 충격, 파격, 반전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이 영화에서 ‘튀는’ 부분이 있다면 딱 하나, 차태현이 연기한 주인공 ‘여장부’라는 캐릭터다. 그는 ‘동체시력’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질환의 소유자로 늘 선글라스를 끼고 산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건을 볼 수 있는 동체시력 덕분에 모든 것을 ‘슬로우 비디오’처럼 볼 수 있지만, 그의 시력은 지나치게 발달한 나머지 지나치게 취약하다. 그는 달릴 수 없다. 달리면 넘어지고 만다. 여장부는 자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저는 이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능력자도 아니고요. 그냥 환자입니다.”
여장부는 서울 종로구 CCTV 종합관제센터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종로구에 설치된 200개의 CCTV 화면을 지켜보는 게 그의 일이다. 그 화면들 속에서 그는 어린 시절 첫사랑이었던 여자를 발견한다.
CCTV라는 소재는 대개 감시나 훔쳐보기와 연관되면서 첨단 사회의 그림자라는 부정적 측면에서 조명되어 왔지만, 이 영화에서는 뜻밖에도 관심이나 소통의 매체로 사용된다. 여장부는 CCTV를 통해 한 여자를 만나고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남상미는 이 영화에서 여장부의 첫사랑을 닮은 여자 ‘수미’를 연기한다. 부모를 잃고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청춘이지만 택배회사 콜센터에서 일하면서 뮤지컬 배우의 꿈을 안고 산다. 이 의지할 것 없는 인생에 어느 날 상당히 이상한 남자 여장부가 다가온다.
그러고 보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뭔가 모자란 사람들이다. 환자에 빚쟁이, 직업은 알바 아니면 계약직이고, 게다가 노총각 노처녀들이다. 다들 친구도 없다. 고물 줍는 소년, 마을버스 기사도 주요 인물로 나온다. “차 있어?”란 대사가 여러 번 반복된다. 아무도 차 가진 이가 없다. 영화는 이들, 루저들을 데리고 서울 삼청동의 오래된 동네를 배경으로 이제는 낡아버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을 것 같은 동화적인 이야기를 끌고 간다.
차태현은 “요즘 영화들의 공식과 달라서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면서도 “그래도 이런 영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출연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옳았다. 속도를 좇느라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느리게 보면 볼 수 있고 보이는 것들, 누구나 누군가에게는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이 영화는 보게 해준다. 200개 CCTV 화면 속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인 것처럼. 10월 2일 개봉.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착하고 느린 영화… 신선할까 불편할까
입력 2014-09-24 0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