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원에 달하는 미술작품 1만점을 기증한 사나이.’ 재일교포 2세 출신 컬렉터 하정웅(75·사진) 수림문화재단 이사장에게 붙은 별명이다.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수천억원? 1만점이라고? 도대체 왜?”
하 이사장은 이런 의문들을 최근 발간한 에세이 ‘날마다 한걸음’(메디치미디어)을 통해 풀어냈다. 22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 음식점에서 간담회를 가진 그는 “50년 전부터 모으기 시작한 미술품에 얽힌 사연과 가치, 기증 동기 등을 책으로 엮었다”고 밝혔다.
가난한 재일교포 이주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하 이사장은 고교를 졸업한 후 가전제품 판매에 나섰다. 때마침 1964년 도쿄올림픽이 열려 가전제품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큰돈을 모았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게 되자 미술품을 하나둘 수집했다. 그의 컬렉션은 집안형편 때문에 접어야 했던 어릴 적 화가의 꿈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재일교포 작가 작품을 주로 사들였다. 1984년 도쿄국제예술대회에서 우연히 만난 이우환 화백이 “유럽에 가서 활동해야 하는데 경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500만엔(당시 5000만원)을 요청해 700만엔을 지원하고 작품 13점을 받기도 했다. 고흐와 피카소 등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도 모았다.
50년간 그렇게 모은 1만여점을 한 점도 빠짐없이 고국에 기증했다. 미술품 8000여점은 선친의 고향인 광주시립미술관과 영암군립미술관에, 유물 2000여점은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는 “돈으로 따지면 아깝지 않으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제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 역사의 숨결과 흔적이 깃든 공공재이므로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며 “앞으로도 날마다 한걸음씩 꾸준히 수집해 기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하정웅 수림문화재단 이사장 “수천억원 상당 미술품, 고국에 기증한 까닭은…”
입력 2014-09-23 0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