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홍수 속 ‘럭셔리 북’ 어른도 반했다

입력 2014-09-23 03:31
백조의 깃털과 공주의 드레스가 종이 위에 세공을 한 듯 섬세하게 표현된 그림책 '백조의 호수'. 보림 제공
종이예술인 페이퍼 커팅의 특성을 살린 '깃털과 단어'. 보림 제공
최근 나온 그림책 ‘백조의 호수’(보림)는 정교한 ‘레이저 커팅’이 돋보인다. 차이콥스키의 발레 ‘백조의 호수’를 원작으로 한 이 책은 밤을 연상시키는 푸른색과 빛나는 금색, 그리고 흰색으로만 이뤄져 있다. 백조의 깃털, 왕자와 공주의 옷은 레이저로 섬세하게 오려져 종이로 된 레이스를 보는 듯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종이 틈 사이로 비치는 그림자가 극적인 효과를 자아낸다. 앞면에서 금색이었던 백조 공주가 뒷면에선 푸른빛이 되어 어둠 속을 도망치는 장면에선 정말로 백조 공주가 사라지는 듯하다.

어린이책이 고급스러워지고 있다. 단순한 유아용 그림책이 아니라 한 권의 예술작품으로 성인독자까지 아우른다. ‘백조의 호수’는 3만5000원이다. 이 책과 함께 나온 그림책 ‘깃털과 단어’(보림)는 종이를 잘라 만든 ‘페이퍼 커팅’의 특성을 한껏 살린 작품. 내용은 서식지별로 숨어있는 동물을 찾는 ‘유아용’인데, 가격은 2만5000원이다.

이 두 책은 출판사 보림의 ‘더 컬렉션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보림의 박은덕 편집팀장은 “우리는 그림책이 ‘칠드런북’이 아니라 ‘픽처북’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과 기술혁신(레이저 커팅)의 만남으로 고급하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읽지 않고 보는 세대를 위한 그림책을 고민하다가 인문·예술의 향기가 물씬한 그림책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보림은 앞서 8월 초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을 재해석한 병풍 스타일의 그림책을 펴냈다. 펼치면 10m에 이르는 이 책은 앞면은 유화, 뒷면은 색연필과 수채 그림으로 되어 있다. 유아용이라고 하기 어려운 몽환적인 일러스트다. 가격은 무려 5만원이지만 이 가격대에서는 이례적으로 500권 이상 팔렸다. 유아, 어린이뿐만 아니라 그림책 컬렉터까지 타깃으로 삼고 있는 출판사의 전략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비룡소의 ‘지브라’ 시리즈도 같은 맥락이다. ‘나, 꽃으로 태어났어’는 한 송이 꽃의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시처럼 노래한 팝업북. 페이지마다 접혀있는 종이를 펼치면 꽃잎이 한 장 한 장 펴지듯 빨강 노랑 보라 파랑 꽃으로 피어난다.

비룡소 편집부 김산정 과장은 “지난 5년 새 그림책 매출은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시장이 위축되면서 중저가 책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역발상으로 고급스럽고 소장 가치가 있는 아트북 개념의 그림책을 내놓자는 전략을 세웠다”며 “그림책이 어린이만 보는 책이라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1∼100세까지 함께 보고,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시리즈를 계속 출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