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20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에서 외국인 투자 유치 설명회를 가졌다. 지난해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이 투자 유치 기구를 정비한 뒤 처음으로 외국에서 가진 행사다. 설명회는 대외경제성 산하 원산지구개발총회사 주최로 진행됐다. 북한은 이 자리에서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줘 눈길을 끌었다. 현장 일문일답을 허용했는가 하면 원산·금강산 개발 청사진을 파워포인트(PPT) 자료로 만들어 대형 스크린을 통해 설명했다. 한국 특파원들에게 명함을 나눠주며 개별 취재도 허용했다.
특히 원산지구개발총회사 오응길 총사장은 금강산의 현대아산 자산에 대해 “몰수한 적이 없다”며 금강산과 원산 일대에 한국의 추가 투자를 제안했다. 그는 “남측 재산이 부동산이라서 우리 땅에 있을 뿐 재산 등록은 현대 명의로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몰수 안 하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투자자의 합법적 소득은 반출 때 세금 없이 보낼 수 있게 하고 있다”며 “현금으로 가져가려면 반출증을 준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제시한 투자 장려 대상은 첨단기술 도입, 국제시장 경쟁력을 갖춘 제품, 사회간접자본(SOC), 과학 연구·개발 등이다.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회원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에는 중국과 미국 호주 등 교포 기업인 20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 기업인은 ‘5·24조치’ 때문에 대북 접촉이 불가능하니 동포 기업인들부터 끌어들이겠다는 계산이다.
북한 사정에 밝은 한 참석자는 “북한은 김정은 체제가 안정을 찾아가면서 경제 개혁을 국가 최우선 목표로 정하고 이를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중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최근 북한 분위기를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와 비슷하다고 보고 있다. 중국에서 1980, 9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서비스 제공에 대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개념이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때마침 국회 외교통일위 소속 여야 의원 5명은 두만강 하구 북·중·러 접경지역,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종착역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하산 등을 둘러봤다. 이들은 북한과의 접경도시 지린(吉林)성 훈춘(琿春)을 거쳐 북·중·러 3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팡촨(防川)도 방문했다. 팡촨에 가보면 대륙 진출의 기회가 봉쇄된 대한민국의 현실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이들은 비록 북한 나진 방문은 불발됐지만 소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직접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북한은 군사적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지만 개혁·개방 움직임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로서는 이런 상황을 계속 외면하는 게 과연 바람직할까. ‘통일대박론’을 외치는 정부라면 남북 화해와 한반도 안정을 위한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거기에는 5·24조치의 재고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한 수 위인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사설] 북한, 외국인 투자 제대로 유치하려면
입력 2014-09-23 0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