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세상 사람들이 무심코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치명적 독이 될 수 있다. 내게는 유독 그런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더 기도하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나는 피조물이었다. 그래서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강함으로 붙들어달라고 기도했다.
늦게 결혼을 했는데 다행히도 바로 아이가 생겼다. 기뻤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를 괴롭히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딸들은 엄마 팔자 따라 간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한번 귀에 꽂히자 아이를 낳다가 돌아가신 생모의 일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나도 엄마처럼 아이 낳다가 죽는 건 아닐까. 그 다음부터는 두려움이 나의 정신을 병들게 했다. 아무에게 털어놓고 말할 수도 없었다.
가장 믿는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남편은 진지하게 위로하다가 나중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드러내면서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래서 또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냥 나온 말이 “하나님 살려 주세요”였다. 아이의 얼굴은 누구 닮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훌륭한 사람 만들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데 정작 나오는 기도는 “살려달라”뿐이었다. 오로지 살려달라는 기도만 했다. “우리 두 사람을 꼭 살려주세요”라고 매달렸다. 이제 결혼해서 정말 행복한데 이렇게 좋은데, 아이 낳다가 죽는다면 너무 억울한 것 아니냐고 하면서 매달렸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고 출산의 순간이 왔다. 제왕절개 수술을 위해 마취를 하려는 순간 ‘아 이제는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 천국은 가야 하는데 혹시 걸리는 게 있는지를 떠올리다가 밀린 십일조에서 걸려버렸다. 십일조만 아니면 천국 갈 것 같았다.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안 되겠다 싶어 “하나님, 밀린 십일조는 남편에게 받으시고 저는 천국 가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취로 인해 의식을 잃었다.
누군가 나를 흔들면서 “그만 울라”는 소리에 깼다. 순간 “아이는요?”하고 물었다. “아이는 건강하고 예쁘다”는 소리에 그때부터 온 몸이 아픈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앞으론 십일조 잘해야지 다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올 수도 있는 사건이었지만 그때는 꽤 심각했다. 세상의 말로 우리가 약해질 때,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만드신다. 그래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검사 시절에 ‘귀양’을 간 적이 있다. 국민은 정의로운 검사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검사가 정의로움을 실천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용기가 있어야 한다. 보통의 경우 검사가 자신의 상사와 의견이 다를 때 잘 상의해서 해결해간다. 그러나 어떤 검사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심각하게 상사와의 충돌이 생길 때도 있다. 내게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그때의 기준은 ‘내 등 뒤에 계신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였다. 차라리 검사를 그만두는 게 낫다고 판단이 되었고, 내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미움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결정을 내렸지만 결과는 좌천이나 다름없었다.
그 당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열심히 읽으면서 위로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게 인간인거지, 이게 세상인심인거지,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거니까’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귀양 가는 나를 보고 많은 사람이 “정 검사는 끝났다(출세하기는 글렀다)”고 말했다. 그때 십일조 사건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에게 외쳐주었다. ‘세상이 내게 끝났다고 말하지만 이젠 더 이상 약해지지 않아. 하나님이 강하게 나를 붙드실 테니까. 그리고 다시 세워주실 거니까. 앞으로 실망하지도, 절망하지도, 걱정하지도 말자.’ 몇 년 뒤 기적처럼 내게 기회가 왔다. 행정부처 파견이었다. ‘귀족검사’나 가는 코스였다. 언감생심 나 같은 사람은 꿈도 꿀 수 없는 ‘꽃보직’이었다. 내게 여성가족부 파견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이 얘기는 더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정리=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역경의 열매] 정미경 (9) 검사 시절 한때 ‘귀양’… 난중일기로 위로 받아
입력 2014-09-23 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