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올해의 작가상’ 사진작가 노순택 “사진이란 세상의 본질을 찾는 거울”

입력 2014-09-23 03:09
사진작가 노순택은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 시리즈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수여하는 '올해의 작가상'에 선정됐다.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 #P-XIII050101(2013)'.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 #XIII050901(2013)'.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털은 고작 털이지만, 몸에서 비롯되지 않은 털은 없습니다. 이를테면 사진은 세상의 털이지요. 몸통은 아닙니다. 하여 털을 보여 드릴 테니 그 털이 어떤 몸에서 비롯된 것인지 생각해 보시렵니까. 그러면 털에서 거울을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국립현대미술관 ‘2014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된 사진가 노순택(43·사진)의 수상 소감이다. 사진은 세상의 일부(털)만 보여 주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세상의 본질을 찾고 나아가 자아를 성찰(거울)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노순택은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이란 전시로 사진가로는 처음으로 이 상을 받았다. 전시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1일 9일까지 이어진다.

20일 전시장에서 노순택을 만났다.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공간을 쫓아다닌다고 해서 ‘사진계의 난쏘공(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 불리는 노순택이 ‘올해의 작가상’에 선정됐을 때 미술계는 깜짝 놀랐다. 사진작가로는 첫 수상이란 점도 놀라웠지만, 국내 유일의 ‘국립’ 미술관이 국가 권력의 모순과 오작동의 풍경을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를 뽑았기 때문이다.

수상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노순택은 “내가 작업을 통해 건네고 싶은 건 이미지와 말이었고, 이를 통한 사고의 촉구였다”며 “지난 10여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숱한 사회적 갈등과 충돌의 풍경들을 찍어온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카메라는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용산 참사, 쌍용차 해고, 밀양 송전탑,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등 굵직한 사회적 갈등을 찍어왔다. 노순택은 이를 “참혹한 풍경”이라고 표현했고, “이 장면들은 잔인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무능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이란 전시 제목은 여기서 나왔다. ‘젊은 뱀’은 다른 매체보다는 역사가 짧지만 뜨겁고 교활한 속성을 가진 ‘사진’을 의미한다.

노순택의 작품에는 사진기를 들고 현장을 좇는 저널리스트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는 “사진이 ‘무능한 풍경’ 속을 ‘뱀’처럼 가로지르는 모습, 이것이 이번 전시의 주제의식”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사진들은 사진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투명하고 객관적이며 불편부당한 것처럼 여겨지는 사진은 정말 신뢰할만한 것인가, 사진이 설령 유능함을 발휘할지라도 그 유능함이 무능함의 반대말일 수 있는가 등 사진 자체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심사위원단도 “세월호 참사 당시 사진기자들의 관음적 시선에 대해 사회적인 비난이 있었다”면서 “노순택의 사진은 사회적·정치적 이슈를 다루면서도 카메라의 본질과 사진작가로서의 존재 의미를 고민하는 한편, 격렬한 현장에서도 우리의 인식을 뒤트는 유머 감각이 인상 깊다”고 평가했다.

노순택은 수상으로 인한 부담을 털어내려 애쓰고 있다. 그는 “사진을 다루고 사진에 집착하며 사진을 공부하지만 내가 사진을 대변하는 사람일 수는 없다. 어깨를 무겁게 하지 않으려 한다”면서 “사진과 사회에 관해 늘 품어왔던 궁금함, 그리고 작업을 풀어가면서 발휘했던 엉뚱함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사진이 과연 예술이 될 수 있느냐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도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다.

“1819년 발명된 사진은 올해로 175살로 회화나 조각 등에 비하면 갓난아기쯤 되는데도 시각의 역사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예술부터 과학, 생활까지 어디건 침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진의 특징이자 장점인 만큼 강박적으로 예술임을 입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작업 스타일에 대해서는 “연출이나 합성을 배제하고 관찰에 기반을 둔 스트레이트한 사진을 찍고 있다. 다만 연출된 장면이 아님에도 마치 연출된 듯한, 우리 삶과 사회의 기이한 순간들에 눈길을 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대로의 장면을 찍지만 적극적인 프레이밍과 시간의 선택, 노출의 조절 등을 통해 내 편협한 시각을 드러낸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활동 계획을 물었다. 짧고도 강렬한 답변이 돌아왔다.

“카메라를 들고 당분간 거리에 머물 것입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