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이 올해 2분기 제로(0) 성장을 기록했다. 침체됐던 유럽이 성장 국면으로 전환한 지 1년 만의 원상복귀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 3국의 경제가 흔들린 영향이 컸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위기 국면을 탈출하기 위해 재정확대, 구조개혁 카드를 꺼내놓는 등 ‘유럽판 아베노믹스’를 시도하고 있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일장춘몽’된 유로존 경기 회복=유로존은 2008년 금융위기, 2010년 재정위기를 겪으며 2011년 4분기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지난해 2분기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서며 회복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이 같은 회복세는 1년이 고작이었다. 올해 2분기 성장률은 다시 제로로 주저앉았다. 금융위기가 촉발된 미국(1.0%)과 유럽연합(EU) 국가지만 유로존에 속하지 않은 영국(0.8%)이 성장세를 이어간 것과 대조적이다. 유로존의 지난달 소비자물가도 전년 동기 대비 0.3% 상승에 그쳐 2009년 10월 이후 4년10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유로존 주요 3국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경제가 부진한 탓이 컸다. 지난해 이들 국가가 유로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기준 66%에 달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지난해 3분기 이후 줄곧 유로존 평균 이하의 성장률을 기록해왔으나 독일이 이번에 갑작스러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대열에 합류했다. 1분기 크게 늘었던 건설 투자가 다시 감소하며 성장률을 0.4% 포인트 끌어내렸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노동시장 경직성이 심해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오래전부터 받아왔다. 프랑스는 지난 4월에야 내각을 개편해 개혁정책 추진에 들어갔다. 그러나 재정적자가 문제다. 프랑스는 지난해 GDP 대비 4.3%의 재정적자를 기록했고, 재정적자 3% 목표달성 시한을 2015년으로 미뤘다. 미셸 샤팽 프랑스 재무장관은 지난 10일 올해 재정적자가 4.4%로 늘고 내년에도 3%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유로존 침체를 부추겼다.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러시아와의 교역이 급감했다. 독일의 올 상반기 러시아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5% 줄었고 프랑스는 13.6%, 이탈리아는 8.9% 감소했다. LG경제연구원 류상윤 책임연구원은 “유로존 부진,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부진 등 세계경제의 성장 모멘텀이 약화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그것을 키우는 불씨가 됐다”고 설명했다.
◇안갯속에 갇힌 ‘드라기노믹스’=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난달 말 미국 잭슨홀에서 열린 세계 중앙은행 관계자회의에서 “단기 물가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고에도 없던 내용이었다. 침체된 유로존을 살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발표 직후 ECB는 지난 6월에 이어 추가 금융완화 정책을 공개했다. 기준금리를 0.15%에서 0.05%로 내리고 금융기관의 초과 예치금에 물리는 마이너스 이율을 기존 0.1%에서 0.2%로 올리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가 민간 대출을 늘려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을 갖는 시각이 많다. ECB의 은행자본 적절성 평가를 앞두고 부실채권을 다수 보유한 은행들이 대출을 꺼릴 것이란 지적이다. 실제로 유로존 은행들의 기업 대출과 가계 대출은 지난해보다 줄고 있는 추세다.
드라기 총재는 독일의 재정 확대와 프랑스, 이탈리아의 구조개혁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3국의 협조 여부는 불투명하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지난 9일 의회에 2015년도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강력한 재정이 성장과 고용 촉진의 최선책이 아니란 사실은 이미 지난 몇 년 사이 입증됐다”며 재정을 확대하라는 국제사회의 압박을 일축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개혁도 안갯속이다. 프랑스는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아르노 몽트부르 전 경제장관을 경질했고, 이탈리아는 지난 2월 39세 젊은 나이로 취임한 마테오 렌치 총리가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경쟁력을 끌어 올리겠다고 선언했지만 아직까지 지지부진하다.
세종=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獨·佛·伊 동반 부진… 유럽판 아베노믹스는 안갯속
입력 2014-09-23 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