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쌍둥이 통해 표현한 사랑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 日 노다 히데키 연출 ‘반신’

입력 2014-09-23 03:21
노다 히데키는 “다음번엔 ‘킬’이란 작품을 한국에서 올리고 싶다”며 “세계를 정복하려는 패션 디자이너가 결국 주변에 한 사람도 남지 않아 고독해 하는 이야기다. 칭기스칸에서 캐릭터를 따왔다”고 말했다. 이병주 기자

“고독이란 힘든 것이라고 말하지. 하지만 난 혼자이고 싶어. 사랑받고 싶어.”(슈라)

연극 ‘반신(半神·Half gods)’은 아홉 살 샴쌍둥이 슈라와 마리아의 이야기다. 언니인 슈라는 자신의 몸에 기생하면서 자신보다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동생 마리아를 시샘한다. 몸이 붙어있어 혼자가 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슈라는 더욱 혼자이고 싶다. 혼자 100%의 사랑을 차지하고 싶다.

열 살이 되기 전 둘 중에 한 명은 생명을 포기해야 한다. 몸집이 커질수록 하나의 심장은 두 쌍둥이 모두에게 부담이다. 영리한 슈라는 둘 중에 한 명만 살수 있단 사실을 알게 된 뒤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이 버려질까 두려워한다. 그리고 자신이 죽거나, 혹은 동생의 목을 졸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두 쌍둥이 중 누가 살아남게 될까.

스토리는 원작 만화를 중심으로 했지만 무대는 연출가의 상상력으로 충만하다. 배우들의 연기에 한참 빠져 들다보면 갑자기 연출 역할인 배우가 무대 위에 올라 연기 지도를 시작한다. 그러다 다시 극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극 중 극’ 형태다.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며 이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인간의 고독이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인근에서 극본과 연출을 맡은 노다 히데키(58)를 만났다. ‘반신’은 그가 30세 때인 1986년 초연한 작품. 2005년 연극 ‘빨간 도깨비’로 한국 배우들과 공연을 했던 그가 9년 만에 다시 만드는 한·일 합작품이자 명동예술극장과 도쿄예술극장의 공동제작품이다.

당초 12일부터 공연할 예정이었지만 슈라 역을 맡은 배우 주인영(36)이 급성 맹장염을 앓으면서 한 주 연기됐다. 한 주 늦춰진 인터뷰에서 노다 히데키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산고(産苦)”라고 개막 소감을 표현했다.

노다 히데키는 “타인을 갈구하지만 혼자가 되고 싶다는 역설적 욕망 속에서 갈등하는 내용”이라며 “보편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공연하는 시대와 장소가 달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작품은 실제로 30년 전에 완성됐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신선하다. DNA 구조인 나선형으로 천장까지 이어지는 계단, 소용돌이처럼 돌아가는 세트 위에서 두 쌍둥이 소녀와 그들을 다른 차원으로 데려가기 위한 요괴들의 연기가 펼쳐진다. 수학 공식과 탱고 음악이 메시지를 암시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귀에 익은 가요 ‘혼자가 아닌 나(서영은)’ ‘백 만 송이 장미(심수봉)’ 등도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그에게 상상력의 근원을 물었다.

“일상적이고 가까운 곳, 작은 것을 보면서도 각도를 바꿔보면 상상이 시작돼요. 한번은 제 엄지손가락을 보면서 ‘지문이 실처럼 뽑혀 나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지문이 없다는 건 나만의 정체성도 사라진다는 것이죠. 이번 ‘반신’에 나오는 소용돌이와 나선형 구조로부터 시작된 내용도 모두 이런 상상 속에서 탄생했죠.”

노다 히데키는 우리나라는 물론, 영국 등 유럽, 태국 등 타 아시아 국가들과도 활발히 작업해온 세계적 연출가다. 연출뿐만 아니라 극본을 쓰고 연기도 하는 전방위 예술가로 활동한다. 도쿄대 법대를 중퇴하고 연극판에 뛰어들어 극단 ‘유메노유민샤(꿈꾸는 유목민이란 뜻)’를 만들었던 1976년부터 일본에선 그의 행보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올리는 작품마다 매진 기록을 세우는 스타 연출가이기도 하다.

그는 “경계선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불안하고 두렵지만 한 발짝 떼 도전하게 된다. 젊은 세대에게 자극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과는 거리도 가깝고 언어도 비슷해 공동 작업을 하기 쉽다”며 “교류를 이어간다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정치와 사회, 문화와 무관하진 않죠. 그럼에도 저는 현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것만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명의 정치가보다 한 편의 작품이 더 오래갈 거예요. 두 나라 사이에 어려운 상황에 있을지라도 교류 작업을 계속 해 나가야할 필요가 있죠.”

‘반신’에는 배우 주인영과 함께 전성민(28), 오용(40), 서주희(47) 등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 12명이 출연한다. 이들은 다음 달 5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을 한 뒤, 다음달 24∼31일 도쿄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