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에서 ‘의원 전수조사’가 새로운 의사결정 방식으로 부상하고 있다. 의원총회와 그룹별 모임을 통해서는 130명 의견을 조율하기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왕적 리더십이 사라졌고, 의견 개진이 다양한 야당 특유의 정치 현실을 감안한 차선책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리더십과 팔로어십(follower ship)의 상실이 불러온 정치의 쇠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전수조사, 누가 왜 사용하나=전수조사는 당내 기반이 약한 지도부가 강경파 혹은 반대파를 진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박영선 원내대표의 ‘탈당 파동’ 출구전략으로 의원 전수조사를 선택했다. 원내대표단이 지난 16일 소속 의원들에게 ‘당이 총의를 모아 후임 비대위원장을 추천하면 박 원내대표가 임명한다’는 것과 ‘원내대표직은 세월호 특별법 관련 마지막 수습 노력을 한 뒤 사퇴한다’는 두 가지 설문을 만들어 전수조사를 했다. 박 원내대표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한 강경파와 달리 침묵하는 다수 의원들은 파국을 막기 원한다는 점을 겨냥한 전략이었다.
조사를 하는 사람도, 응답하는 사람도 조사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실제로 80∼90명이 찬성했고, 이튿날 박 원내대표가 당무에 복귀하고,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선출되는 수습책이 이어졌다. 이런 형식으로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은 나왔지만 어쨌든 일단 사태는 봉합됐다.
앞서 전수조사는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 체제’에서 활용됐다. 투톱은 지난 5월 기초연금법을 둘러싸고 당내 강온파 충돌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찬반투표를 벌였다. 이를 토대로 당 지도부는 강경파를 진압했다. 안·김 투톱은 지난 4월에는 새정치연합 창당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기초선거 무공천을 당원투표와 여론조사를 통해 공천으로 뒤집었다. 박 원내대표 측 관계자는 “전수조사를 둘러싼 해석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도 전수조사가 상당히 자주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불가피한 선택? 사안에 따라?=전수조사 방식을 놓고 당 안팎에서는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옹호론이 나온다. 결과적으로는 소수와 다수 의견이 모두 반영될 수 있고, 이해관계가 첨예한 현안을 놓고 의견을 구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떳떳하지 못하다”는 비판론도 많다. 새정치연합 한 초선 의원은 2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의원총회를 열어서 결정하는 게 제일 좋다”며 “설문조사 문안이 객관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고 휴대전화로 하다 보면 사람마다 다르게 이야기를 하더라”고 말했다.
사안에 따라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기초연금과 같은 정책에 관한 결정은 지도부에서 전수조사를 해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지만, 원내대표 거취 등 정치적 사안은 전수조사 사안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김준석 동국대(정치외교학) 교수는 “의원들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당내 소통과 언로가 막혀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의총 발언과 전수조사 내용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명지대 신율(정치외교학) 교수는 “의원들이 당내 눈치를 보지 않고 의견을 표명하는 방식으로 전수조사가 채택됐다는 것 자체가 (야당의) 서글픈 현실”이라며 “의총을 하든지 지도부가 결정하는 방식으로 해야지 전수조사 방식은 사실상 꼼수”라고 지적했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
[기획] 새정치, 툭하면 전수조사… 리더십도 팔로어십도 없다
입력 2014-09-22 0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