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도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희생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려고 세월호에 탔다가 200여명이 한꺼번에 변을 당했으니 정말이지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참사다. 게다가 승객들을 버리고 자신들만 살겠다고 줄행랑을 놓은 선장과 선원들, 무리한 화물 적재와 증축, 정부의 초동대처 실패와 뒤늦은 구조작업으로 인한 골든타임 허비 등이 원인으로 드러나면서 많은 국민들은 아무 잘못 없이 저세상으로 떠난 어린 학생들을 떠올리며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구명조끼마저 양보한 채 침착하게 동료 학생들을 구하려다 숨진 학생,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말만 믿고 서서히 침몰해 가는 배 안에서 부모에게 ‘사랑해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긴 학생 등 가슴 뭉클하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잇따라 전해질 때는 할 말을 잊을 수밖에 없었다. 국민과 언론의 시선이 고교생들에게 쏠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단원고 학생과 교사가 아닌 다른 희생자들은 뒷전으로 밀렸다. 팽목항에서부터 그랬다. 언제부턴가 ‘일반인 희생자’로 불리는 43명 가운데에는 부부도 있고, 환갑을 맞아 제주도로 여행 가던 초등학교 동창들도 있고, 결혼을 앞둔 커플도 있다. 부모·오빠와 탔다가 혼자만 구조된 다섯 살짜리 여자 어린이, 부모·형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졸지에 가족을 잃은 일곱 살짜리 남자 어린이의 사연은 가슴을 여미게 한다. 대학을 휴학하고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려 세월호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하다 숨진 두 청년도 결코 소홀히 다뤄선 안 될 사례였다. 그러나 모두 대수롭지 않게 처리됐다.
안산에 마련된 정부합동분향소에도 당초에는 일반인 희생자들 자리가 없었다. 추모관도 따로 만들어질 모양이다. 지난달 21일 안전행정부와 인천시의 협조 하에 인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 내 만월당 북측 구간에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을 건립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희생자에 대한 차별은 유가족대책위원회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이 주축이 된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와 별도로 ‘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으나 관심은 전자에 집중돼 있다. 청와대마저 유족들을 만나면서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에게는 연락하지 않았다. 희생자가 단원고 학생들에 비해 소수라는 점, 유가족들의 연고지가 서울 인천 경기 제주 등 널리 퍼져 있는 점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자위도 해봤지만, 그들의 상처는 깊어만 갔다.
울분을 처음 터트린 건 지난 5월 22일이었다. 인천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무능으로 희생된 대한민국 국민인 일반인 희생자들의 죽음을 차별하지 말라”면서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족의 슬픔과 아픔의 무게는 다를 수 없다”고 외쳤다. 절박한 심경이 읽힌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다시 소외됐다. 그러다가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안을 도출한 지난달 그들의 목소리가 부각됐다. 재합의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세월호 가족 대책위와 반대로 재합의안을 수용한다고 밝히자 비교적 크게 보도된 것이다. 그 당시 격려도 있었으나 “돈 보고 그러는 것이냐”는 등의 비난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는 현재 무관심과 차별을 끊으려 전열을 가다듬는 분위기다. 세월호 참사로 아버지를 잃은 정명교 대변인은 전화 통화에서 “슬프지만 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건 힘든 상태라는 점을 인정한다. 빨리 특검을 통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머잖아 제3의 외부세력을 적시하면서 유가족 대열에서 빠져 달라고 요구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대리기사 폭행 파문에 휩싸인 세월호 가족 대책위에는 순수한 초심을 잃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들이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도록 정부와 정치권,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
[김진홍 칼럼] “죽음·고통을 차별하지 말라”
입력 2014-09-22 0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