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다녀간 지 한 달. 뒤늦게 교황의 강연을 모은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라는 책을 읽고 있다. 자신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매 순간 자신을 돌아보며, 이웃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범인(凡人)들의 주장은 교황의 말씀과 좀 다르다. 칼럼니스트인 조지프 엡스타인은 가십을 다룬 책 ‘성난 초콜릿’에서 “(뒷담화에서 제외돼) 깜깜 무소식이고 오리무중이 되는 것, 이것은 어쩌면 성자도 바라지 않는 일이다”라고 썼다.
뒷담화 예찬을 편 학자도 적지 않다. 심리학자 세라 워트는 “만약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십을 주고받는 데 가담했더라면 사람이 얼마나 의지가 되며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인지 깨달았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끼리니까…”로 시작하는 뒷담화의 묘미를 가리키는 것일 게다. 진화생물학자 존 휘트필드는 험담은 함께 흉보고 맞장구치며 사회적 유대감을 다지는 생존의 방편이라 보았다.
무엇보다 뒷담화를 위해 성인이 되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 직장인이라면 너무 잘 알고 있는 그 이유는 씹어야 풀리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도 초기작 ‘실수연발’에서 “가자, 가십의 향연으로. 오랜 슬픔 뒤에 그런 축제가 있어야지”라고 썼다. 직장인 버전으로는 ‘가자, 뒷담화의 카톡방으로. 오랜 스트레스 뒤에 그런 출구라도 있어야지’쯤 되겠다. 이렇게 엄연한 순기능이 있음에도 뒷담화를 멀리하라는 가르침은 뒷담화의 방점이 ‘뒤’에 있기 때문이다. 등 뒤에서 험담이나 늘어놓는다는 죄의식 때문에 찜찜하고, 상습적인 뒷담화 마니아는 결국 신뢰할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래서 탈무드에서 험담은 살인보다 위험하다고 한 모양이다. 살인은 1명을 죽이지만 험담은 험담하는 자신, 험담을 듣는 사람, 험담의 대상이 되는 사람까지 3명을 죽이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비겁한 뒷담화 대신 떳떳하게 앞에서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떳떳해도 문제다. 야구장 문제로 시장에게 달걀 스트라이크를 던진 시의원이나, 탈당설로 나라를 시끄럽게 해놓고 “분노한 분들은 내게 돌을 던지라”며 ‘앞담화’를 요구한 야당 수장은 떳떳해도 너무 떳떳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나로 인해 남이 죄를 범하지 않기”를 기도했다고 한다. 당신에 대한 미움과 원망으로 혹 다른 사람이 죄를 지을까 걱정한 것이다. 자신이 ‘뒷담화 유발자’는 아닌지 스스로 경계하는 마음, 성인의 경지다.
권혜숙 차장 hskwon@kmib.co.kr
[한마당-권혜숙] 달걀, 돌, 뒷담화
입력 2014-09-22 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