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과 군(軍) 형사사건과 관련하여 기소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현대법의 원천인 로마법의 형사소송법에서 기소권은 누구에게 있었을까? 놀랍게도 로마의 형사소송은 ‘사인소추(私人訴追)’ 방식을 채택했다. 사인소추의 본질은 로마 시민이면 누구나 형사재판을 청구하여 원고로서 소송을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증거수집 및 범죄입증의 책임은 국가기관이 아니라 개인에게 달려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검사가 독점하는 대부분의 역할을 개인이 떠맡은 셈이다. 로마 형사소송법의 두 번째 핵심은 배심재판에 있다. 시민 가운데서 배심원들이 선출되어 소송 당사자(혹은 대리인)의 변론을 듣고 양형에 대한 견해를 제시했다.
사인소추에서 국가소추로
그런데 주후 4세기에 이르러 로마의 형사소송 방식은 급격하게 국가소추(國家訴追)로 전환된다. 국가소추란 원고의 부재(不在)나 불기소(不起訴) 의사와 관계없이 국가 관료인 재판관이 직권으로 사건을 조사하여 판결을 내리는 방식이다. 왜 로마는 600여년 이상 유지되던 사인소추를 국가소추로 바꾸어 나갔던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319년 11월 26일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공포한 법이 해답을 던져준다. “만약 누군가가 형사재판을 시작한 것을 후회하고, 죄가 없는 피고와 합의한다면, 양 당사자는 모두 사건에서 자유롭게 된다. 그러나 만약 재판관이 명백하게 죄가 있는 사람(피고)과 원고(고발자) 사이에 ‘범죄를 숨기기 위한 모종의 합의’가 있음을 알게 된다면, 그런 합의를 무효로 해야 하며 유죄가 증명된 자는 법에 의해 규정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사인소추의 함정은 원고와 피고 사이의 ‘모종의 합의’이다. 소송 당사자는 ‘범죄를 숨기기 위해’ 아마도 금전적인 대가를 주고받으면서 담합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따라서 콘스탄티누스는 유죄가 확실한 경우 소송 당사자의 합의와 관계없이 재판관 직권으로 사건을 조사하여 판결을 내리도록 규정한다. 이렇게 하여 사인소추는 곧 사라지고 국가소추가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현대 서구의 형사소송에는 ‘기소강제주의’ ‘배심기소’ 등 사인소추의 흔적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국가소추라고 해서 마냥 우월한 것만은 아니다. 만약 특정 국가기관이 기소권을 독점하고, 독점된 기소권이 ‘범죄를 숨기는 것’에 악용되는 것처럼 보이거나 실제 악용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나라가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대표적인 게 세월호 사건과 군 형사사건이다. 세월호 진상조사특위에 수사권 및 기소권을 부여하자는 목소리가 나온 이유는 검찰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과 軍 기소독점 보완 절실
군 내의 사망사건이나 여군 성희롱 문제에 대해서도 군 기관에 의한 소추독점은 이미 신뢰를 상실했다. 사망(자살) 사건의 경우 일반사망(일반자살)으로 처리되었다가 유가족들이 의혹을 제기하고 재조사가 이루어진 후 가혹행위를 확인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언론에서 ‘군이 사망 사건의 은폐·축소·조작을 밥 먹듯 한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다. 여군 성희롱에 대해서는 아직 실형으로 선고받은 예가 없을 정도로 정의감이 곤두박질쳤다.
검찰과 군에 주어진 기소독점권이 ‘범죄를 숨기기 위한 모종의 합의’에 악용된다면 그런 방식을 보완하는 게 필수적이다. 국가의 기반은 시민의 생명이고,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사법체계가 존재하는 것이지, 사법체계가 무슨 절대불변의 진리인 건 아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심판의 말씀이 두렵다. “…법을 다루는 자들이 나를 알지 못하며 통치자들은 나에게 맞서서 범죄하니…내가 너희를 다시 법대로 처리하겠다….”(렘 2, 8-9, 표준새번역).
남성현 한영신학대 교수
[바이블시론-남성현] 기소독점주의 이대론 안 된다
입력 2014-09-22 0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