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진애] 걷는 길은 걷는 길답게, 올레!

입력 2014-09-22 03:37

바야흐로 ‘걷기’ 열풍이다. 건강에 대한 다양한 열풍이 때때로 사회를 휩쓸지만,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열풍이 걷기다. 단순하면서도 다기능인 데다가 부작용도 없기 때문이다.

걷기가 비단 몸뿐 아니라 정신과 마음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생각을 튼튼하게 하며, 상상력을 키우게 만든다. 걷기는 스스로 철학을 하게 한다.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건강한 자존심을 세우게 한다. 나를 믿게 만들고 세계와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걷기는 환경과 친해지게 만들고 환경의 건강까지 생각하게 한다. 나를 잘 다독여주듯 환경도 도닥여줘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게 만든다.

걷기는 혼자가 아니라 여럿을 생각하게 한다. 길을 내는 것도, 길을 걷는 것도, 길을 살펴주는 것도, 길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도 나 혼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같이 힘써야 한다는 의식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만든다. 걷기 열풍에는 나도 한 역할 했다고 자부한다. ‘걷고 싶은 도시가 가장 좋은 도시’라고 내가 주장해온 지도 사반세기가 넘었다. 우리 사회에 걷기 르네상스를 활짝 꽃피우게 한 ‘제주올레’의 작명을 내가 했다고 자주 자랑하곤 한다. 길과 걷기에 대한 나의 오랜 사랑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셈이라며 뿌듯해 한다. 각기 애틋한 사랑이 담긴 ‘성곽길 나들길 둘레길 바우길’ 등 지역마다 가지각색 길이 생겨나니 요즘은 지방에 갈 때 기댓거리가 하나 더 늘어서 좋다.

한 가지 불만이 있기는 하다. 관이 나서서 길 가꾸기 열풍에 동참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길 넓히기, 포장하기, 가지각색 조형물 만들기 같은 불필요한 사업이 많아지는 게 영 달갑지 않다. 관 특유의 ‘번듯하게 만들어 사진 찍기’가 개입되는 게 영 못마땅하다. 포장만큼은 부디 자제해 달라. 자연에서의 길은 사람의 발로 나야 진짜 길인 게고, 푹신한 땅바닥이어야 진짜 걷기가 이루어진다. 시멘트는 제발 퍼붓지 말고, 알록달록 색깔 있는 아스팔트 포장도 사절이다. 걷기 순례로 이름난 세계의 온갖 길을 잘 봐주기 바란다. 돌이 발에 차이고 비가 오면 질척거리고, 자전거를 타자면 덜컹덜컹 거려도, 어디까지나 흙길이다.

예언을 해보자면, 앞으로 10년 내에 요즘 해대는 온갖 포장을 다 걷어내자는 운동이 벌어질 것이다. 걷기 대세는 결국 더 건강한 걷기, 더 건강한 환경이라는 주제로 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걷는 길은 걷는 길답게! 올레!

김진애(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