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독립투표 부결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됐다. 투표를 앞두고 영 연방 와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그는 정치생명 중단은 물론 역사의 죄인으로까지 몰릴 위기에 처했었다. 실제로 투표를 하루 앞둔 17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가 떨어져 나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고 언론에 털어놨다. 하지만 캐머런 총리의 앞날은 그리 순탄치 않아 보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9일 “투표는 끝났지만 캐머런 총리는 그의 미래를 두려워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캐머런 총리는 2012년 주민투표 합의 체결 이후 줄곧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보수당 지지도가 낮아 분리독립 여론에 개입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찬성 여론이 계속 커지자 이를 방관했다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또 2년이나 되는 투표 대비 시간이 주어졌지만 투표 문항에 ‘자치권 확대를 추진한다’는 등의 제3의 선택지를 넣지 않았다는 질책도 쏟아졌다.
결국 그는 찬반이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고든 브라운 전 총리가 제안한 스코틀랜드 자치권 확대 합의문에 서둘러 서명했다. 그러나 벌써부터 보수당 내에서 반발이 나와 수습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대표와 닉 클레그 자유민주당 대표도 캐머런 총리와 비슷한 처지다. BBC는 “합의문의 세부 사안에 대한 입장이 당마다 다르다”며 향후 스코틀랜드 자치권 확대를 둘러싼 정당 간 다툼 가능성을 시사했다.
반면 알렉스 새먼드 스코틀랜드자치정부 수반 겸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대표는 투표에 지고도 자치권 확대 약속을 이끌어낸 만큼 절반의 승리를 거뒀다. 투표 과정에서 정치적 입지를 확대한 것도 큰 수확이다. 지지자들은 새먼드 수반을 스코틀랜드의 민족영웅 윌리엄 월리스에 빗대 ‘21세기 브레이브하트’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이번 투표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단연 브라운 전 총리다. 영국 일간 데일리미러는 “브라운이 다시 태어났다”고까지 했다. 그는 10여일간 지치지 않는 유세로 반대 진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독립 여론 분출을 보수당 연립정부의 무능으로 돌리며 정당 대표들로부터 자치권 확대 합의문을 이끌어내 여론의 흐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투표 부결은 영국에는 ‘상처뿐인 승리’가 됐다. 정치권은 분열된 민심과 실추된 리더십을 회복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스코틀랜드 독립 무산] 캐머런 英 총리 일단 안도… 앞날은 험난
입력 2014-09-20 0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