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나서야 한다(It takes a whole village to raise a child)’. 이 아프리카 속담처럼 사회 구성원이 함께 자신의 재능으로 학생 교육에 기여하는 ‘교육기부’가 확산되고 있다. 기업 등이 보유한 인적·물적 자원을 제공해 유·초·중등 교육활동에 적용하면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취지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학생들에게 다양한 직업·진로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기업·대학·공공기관 등이 한 자리에 모였다. 18일부터 21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의 킨텍스에서 열린 ‘2014 교육기부 행복교육 박람회’에는 사흘간 12만명의 학생이 다녀갔다. 학생들은 각 기업·대학·공공기관 등이 준비한 체험 코너에서 진로를 고민하고 꿈에 한 발 더 다가서는 시간을 가졌다.
내게 어울리는 직업은 무엇일까?
1만1655개. 한국고용정보원이 2011년 발간한 ‘2014 한국직업사전’에 수록된 직업의 개수다. 새로 늘어나는 직업이 계속 늘면서 2018년도 발간 예정인 개정판에는 더 많은 직업이 등장할 전망이다.
하지만 1만1655개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꿈을 정하지 못하고 아예 ‘꿈 찾기’를 포기한 학생도 상당수다. 2008년 한국고용정보원의 진로교육 실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장래 희망이 ‘없다’고 답한 중학생이 34.4%, 고등학생이 32.2%로 세 명 중 한 명은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창의재단은 아이들의 꿈과 끼를 찾아주기 위해 박람회를 열었다. 박람회에는 국내 유명 기업과 대학들이 준비한 200여개 부스가 마련됐다. 기업들은 신입사원 교육용 프로그램 등을 그대로 재현한 부스를 마련해 체험행사를 가졌다. 참가 기관에서 진행하는 공연·강연 프로그램도 운영됐다.
박람회장에 들어선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와 흥미를 알아보는 ‘적성검사’를 받았다. 진행요원은 해당 학생이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를 분석해 관련 진로 부스를 안내해준다. 학생들은 창조과학·행복충전·건강안전·문화열정·미래설계·나눔사회·자연공감·지식소통 등 8개 부문으로 구성된 체험 부스에서 각종 체험 행사를 가졌다.
교과서 밖에서 만나는 직업세계
18일 롯데호텔서울 베이커리 조리장 정상균(42) 셰프와 함께하는 ‘마카롱 만들기’ 체험 부스에는 학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만큼 인기를 끌였다.
양석현(17)군은 5가지 색의 마카롱 위에 초콜릿으로 글씨를 새겼다. 양군이 새긴 글씨는 ‘엄마 사랑해’였다. 일반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양군은 어릴 적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지만 선뜻 배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양군은 “평범하게 공부를 해서 대학에 진학하길 바라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며 “요리에 관심이 많았지만 학원에 다니긴 어려워 체험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직접 만들어보니 재밌다”고 말했다. 양군은 이번 체험 행사를 계기로 부모님과 함께 진로를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날 교육을 담당한 정 셰프는 “실제 호텔 베이커리에 쓰이는 ‘고급 재료’로 준비하는 등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며 “직접 만들기 체험을 하며 요리에 흥미를 갖는 학생들을 보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30분씩 진행되는 교육 탓에 예상 모집 인원은 80여명이었지만 찾는 학생이 많아 교육은 일찌감치 마감됐다.
박람회장 중앙에는 실제 은행 지점과 똑같은 체험 부스가 눈에 띄었다. 신한은행 체험 부스 입구에 들어서자 오른쪽에는 은행에서 쓰이는 대기표 발급 기계가, 정면에는 대기표가 뜨는 모니터가 설치돼 있었다. 이곳에서는 ‘금융 학교’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금융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이 부스를 찾아 실제 ‘행원’처럼 고객 응대 인사 교육을 받고 통장·카드 발급 등을 체험했다.
“은행원 안쪽 자리는 어떻게 생겼어요?” 신한은행은 학생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안쪽 자리도 공개했다. 또 실제 행원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보기 쉽게 수정한 ‘금융학교’ 프로그램도 선보였다. 학생들은 이 서버를 통해 앞에 앉은 ‘고객’ 친구의 체험용 통장을 발급·해지하는 업무도 했다. 이날 이 부스에는 오후에만 600명 넘는 학생이 다녀갔다.
항공사 조종 체험을 해보는 체험 부스도 인기였다. 박소민(17)양은 어릴 때부터 항공사 승무원을 꿈꿨다. 유니폼을 입고 환하게 웃는 승무원들을 보며 막연히 ‘미소가 예쁜 직업’이라고 생각해 꿈을 꾸게 됐다. 하지만 경기도 의정부의 한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국어 영어 수학 수업을 받으며 꿈을 잊어버렸던 순간도 있었다. 학교에서 박람회 추천을 받고 행사장을 찾은 박양은 제일 처음 대한항공 부스를 찾았다.
대한항공 부스에서는 조종사들이 실제 비행을 하기 전 교육을 받는 ‘모의 조종’ 체험 교육이 이뤄졌다. 실제 대한항공 운항훈련원 소속 교관들이 나와 학생들의 조종 교육을 담당했다. 모니터에는 실제 비행기 계기판이 화면에 등장했고 활주로가 실제 조종석에 앉은 것처럼 화면에 펼쳐졌다. 자동차 핸들 역할을 하는 ‘요크(Yoke)’를 잡은 학생들 표정에는 긴장감이 묻어나기까지 했다.
교관의 안내대로 ‘요크’를 몸쪽으로 당기자 비행기 계기판의 속력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속도가 빨라졌다는 신호다. 박양은 “실제 비행기에 타고 있는 것 같아 신기하다”며 “직접 승무원, 조종사들과 이야기도 해보니 승무원이 되고 싶다는 꿈이 더 간절해졌다”고 말했다.
확산되는 ‘교육기부’ 열기
이번 박람회는 올해로 3회를 맞았다. 지난해 191개의 기업·대학·기관 등이 참여했지만 올해는 ‘교육기부’에 동참하는 참여 단체가 254개로 늘었다. 모두 참여 기관이 직접 부스와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준비된 행사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신한은행 사회공헌부 신윤진 부부장은 “다양한 직업을 학생들에게 선보일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면서 “교육기부를 통해 나눔을 실천해 보니 직원들이 더 즐겁게 일하는 등 조직문화를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은 2010년 12월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교육기부센터’로 지정받아 관련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재능기부’ ‘지식나눔’이라는 이름으로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교육나눔 행위들의 창구를 일원화했다. 재단이 규정하는 ‘교육기부’에는 강의·실습 등 프로그램뿐 아니라 재능 멘토링, 콘텐츠 제공, 시설·기자재 기부 등이 폭넓게 포함된다.
기부를 원하는 기업·대학·공공기관 등이 재단 교육기부센터와 각 시·도교육청에 기부 신청을 하면 승인을 거쳐 참여 학생이 모집되고 교육기부를 제공할 수 있도록 연결해준다. ‘교육기부’를 받을 학생들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지역·운영기관·모집대상·프로그램 분야 등을 검색해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 신청을 하면 된다.
19일 기준 재단 홈페이지에는 ‘작가와 함께하는 인문고전 읽기’ ‘한길책박물관 체험’ ‘행복더하기 야구교실’ 등 142개의 교육기부 프로그램이 등록돼 있다.
한국과학창의재단 김윤정 단장은 “교과서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삶의 다양한 직업을 체험하는 행사를 기획했다”며 “학교에서 자신이 배운 진로 교육이 실제 생활에서 어떤 직업으로 나타나는지 해당 분야 전문가와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됐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요즘 애들 꿈이 없다고요? 꿈도 ‘정보’가 만듭니다
입력 2014-09-22 03:09 수정 2014-09-22 1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