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독립 무산] 유권자들, 英 연방서 분리됐을 때의 혼란 원치 않았다

입력 2014-09-20 04:40 수정 2014-09-20 15:44
스코틀랜드 독립을 놓고 실시된 주민 투표가 19일(현지시간) 부결된 것은 영국 연방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 발생할 각종 혼란을 유권자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비록 연방은 유지했지만 독립 찬성 여론이 44%에 달한 만큼 영국 정부는 마음 상한 스코틀랜드인들을 달래기 위해 조세권과 같은 자치를 대폭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중앙정부의 회유·압박이 부결 원인=독립할 경우 스코틀랜드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는 중앙정부의 주장이 먹혀든 결과로 분석된다. 당초 영국 정부는 투표 부결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렇지만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찬성 여론이 높아지자 파운드화 공유 불가 등의 문제를 꺼내며 유권자를 압박했다. 여기에 주요 기업의 스코틀랜드 이탈 가시화, 유럽연합(EU) 재가입 불가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유권자들의 마음이 흔들렸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를 비롯한 노동당과 자유민주당 등 여야 지도자들이 스코틀랜드 각지를 돌며 자치권 확대를 포함한 각종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며 적극적으로 표심을 파고든 것도 부결 승인으로 꼽힌다. 캐머런 총리는 “독립은 한번 해보는 별거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이혼이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특히 투표일을 이틀 남겨놓고 조세권과 예산권까지도 모두 자치정부에 이양하겠다는 획기적 방안을 제시한 게 유권자의 마음을 돌렸다는 분석이다. 다만 1988년 경찰과 교육, 복지 등 영역에 자치권을 부여한 북아일랜드에 비해 지나치게 자치권을 확대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북아일랜드나 웨일스가 스코틀랜드와 같은 범위의 자치권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될 경우 또 다시 독립 문제를 둘러싸고 한바탕 홍역을 앓을 가능성이 있다.

◇찬성표는 런던 중심의 정치체제에 대한 불만=이번 투표가 런던 중심으로 움직이는 기존 기득권에 대한 저항이라는 해석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의 성격을 현존 정치체제에 대한 국민의 관용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기본적으로 정치 엘리트가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립 추구가 307년간 런던을 중심으로 이어진 정치 기득권에 대한 저항이라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립에 찬성한 사람은 영국을 증오해서가 아니라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미국식 자본주의보다 평등을 지향하는 스칸디나비아식 모델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찬반운동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지도자들이 독립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인 것도 흥미로웠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스코틀랜드가 독립할 경우 EU에 재가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투표를 하루 앞두고 독립을 반대하는 내용의 트윗을 날렸다.

◇개표 초반부터 독립 반대 우세=1950년 총선 투표율 83.9%를 뛰어넘어 역대 최고 투표율(84.6%)을 기록할 만큼 높은 관심 속에 진행된 이번 투표는 스코틀랜드 32개 지역에서 순조롭게 개표가 진행됐다. 가장 먼저 개표가 완료된 클라크매넌셔에서 독립 반대 54%, 찬성 46%로 나오자 반대 지지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반면 에든버러 도심에 모여 있던 1000여명의 독립 지지자들은 알렉스 새먼드 자치정부 수반이 패배를 인정하자 허탈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유권자가 많은 던디와 최대 도시 글래스고 등 4군데를 제외한 28개 지역에서 모두 독립 반대가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스코틀랜드 교회 교단은 투표로 갈라진 민심 수습을 위한 화합의 예배를 주말에 갖는다고 예고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