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33·여)씨가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사귄 친구 정모(35)씨를 만나러 인천 부평역으로 향한 것은 지난 7월 3일이었다. 지적장애 2급으로 지능이 9∼10세 수준인 김씨에게 ‘친구’라고는 집 근처에 사는 친언니와 강아지뿐이었다. 새 친구를 만날 생각에 들떴던 김씨와 달리 그의 장애를 모른 채 약속 장소에 나온 정씨는 김씨를 보자 ‘딴 마음’을 먹었다.
정씨는 전과 45범으로 전과가 있는 다른 친구 3명과 함께 서울 영등포역 일대에서 생활하며 노숙인 등을 괴롭혀온 ‘동네 조폭’이었다. 그는 친구들과 모의한 뒤 “남자친구를 소개해주겠다”며 김씨를 부평역 인근 자신들의 거처로 유인해 휴대전화와 신분증을 빼앗았다. ‘대포폰’을 만들어 팔아 돈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장애인이 휴대전화를 개통하기 위해서는 보증인이 필요했다. 대포폰 판매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이들은 김씨 명의로 대출을 받기로 마음을 바꿨다.
대부업체의 대출심사 과정이 허술한 점을 이용했다. 정씨의 친구 김모(21·여)씨가 피해 여성 김씨를 사칭해 전화 상담을 하는 수법으로 100만원을 대출받았다. 대부업체는 별 의심 없이 대출해주면서 “주부일 경우 대출 금액이 최대 300만원까지 늘어난다”고 소개했다.
한번 범행에 성공한 이들은 더욱 대담해졌다. 지난 7월 9일 피해 여성 김씨를 구청으로 끌고 가 정씨와 강제로 혼인신고를 했다. 정씨는 김씨가 직접 쓴 것처럼 꾸미기 위해 필체를 바꿔가며 혼인신고서를 작성했다. 이들은 ‘주부’가 된 김씨를 앞세워 대부업체 2곳에서 600만원을 추가로 대출받았다. 이렇게 빌린 돈은 모두 유흥비와 생활비로 탕진했다.
김씨는 정씨 일당과 함께 지내는 동안 이들의 협박에 큰 두려움을 느껴 탈출을 시도하지 못했다. 혼인신고를 강요받을 때도 “엄마한테 혼나요”라며 작은 소리로 저항한 게 전부였다. 부평역 일대의 쪽방과 여관을 전전하며 12일간 이어진 정씨 일당의 범행은 “딸이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김씨 어머니의 신고로 경찰에 덜미를 잡혀 막을 내렸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정씨 등 2명을 구속하고 피해 여성을 사칭해 대출을 도운 김씨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9일 밝혔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지적장애 여성 울린 조폭 대출사기
입력 2014-09-20 0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