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미군기지가 자리 잡은 곳은 용마산(동) 덕양산(서) 관악산(남) 북한산(북) 등 외사산(外四山)으로 둘러싸인 서울의 지리적 중심이다. 지척에 북으로는 남산이, 남으로는 한강이 있고 사대문 안 도심으로 들어서는 길목이다. 예부터 군사요충지였던 이곳은 우리 역사의 상흔이 중첩된 공간이기도 하다. 고려 말 한반도를 침입한 몽고군의 병참기지였고,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머물던 곳이다. 구한말 임오군란 때는 청나라 병력이, 청일전쟁 이후 일제 강점기까지는 일본군 주둔지였다. 광복 이후에는 미군이 70년 가까이 자리를 틀고 있다. 서울의 중심인데도 정작 시민들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없는 단절된 공간이다.
그런 용산 미군기지가 2016년 말 한국에 반환된다. 메인 포스트와 사우스 포스트 본체 부지 243만㎡(약 73만평)와 인근 유엔군사령부, 미군수송사령부, 캠프킴 등 산재부지 18만㎡를 합친 방대한 땅이다. 미 대사관, 드래곤힐호텔, 헬기장 등 22만㎡는 계속 사용키로 해 반환 대상에서 빠졌다. 2004년 미국과의 용산기지 이전 협상을 타결한 정부는 그곳에 국가공원을 조성키로 하고 2011년 용산공원정비구역 종합기본계획을 발표했다. 1조2000억원을 들여 2017년 착공, 생태축·문화유산·관문·세계문화·놀이·생산 등의 테마를 지닌 6개 단위공원을 2027년까지 조성하는 구상이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용산국제업무지구 백지화 등 주변 여건 변화를 감안해 올 들어 기본계획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처럼 서울 도심의 ‘허파’ 역할을 할 수 있는 단일 생태공원으로 방향을 틀어 용역을 진행 중이다. 변경안이 마련되면 공청회와 관계기관 협의,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 심의 등 의견수렴을 거쳐 연말까지 확정할 예정이다.
문제는 공원조성지구 외곽에 있는 산재부지에 대한 개발계획이다. 이곳의 개발권은 LH가 갖고 있다. LH는 미군기지가 옮겨가는 경기도 평택에 3조4000억원을 들여 주택·병원·학교 등 미군 부대시설을 지어주는 대가로 정부로부터 유엔사 부지 등을 넘겨받았다. LH는 이전 비용을 환수하기 위해 산재부지의 용도를 자연녹지와 제2·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상업지역으로 변경한 뒤 최대 50층 높이(용적률 최대 800%)로 고밀도 개발할 계획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비용 문제에만 매몰돼 용산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도외시한 개발에는 반대하고 있다. 고층고밀 개발을 강행할 경우 주변지역과의 부조화 등 도시 관리상 문제가 발생하고 남산 조망권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변수가 생겼다.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우리 측 요구대로 전환 시기를 재연기하는 조건으로 동두천 주둔 210화력여단과 용산기지 내 한미연합사령부의 현 위치 잔류를 요구해 온 것이다. 미국은 2003년 협상 당시 연합사 잔류를 요구하며 28만평을 제시한 바 있어 잔류로 결정이 나면 용산공원 계획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용산기지 이전은 한·미 양국이 2003년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이고, 2004년 12월 국회 비준까지 받은 사안이다. 양측이 합의한 대로 이전이 진행되는 게 마땅하다. 용산기지 이전 문제는 전작권 협의와는 별개 사안이다. 정부 당국이 당당하게 협상에 임해 용산기지를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용산공원은 국가적으로 문화·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을 복원해 공원으로 만드는 첫 사례다. ‘수난의 땅’ 용산기지가 온전히 반환돼 자연성과 생태성을 회복하고 지난했던 우리의 근현대사를 되새겨볼 수 있는 시민들의 소중한 공간으로 재탄생하길 고대한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
[내일을 열며-라동철] 용산공원 온전히 지켜내야
입력 2014-09-20 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