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누구도 예상 못한 파격적인 가격, 10조5500억원을 써내 서울 강남 영동대로(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인수자로 선정됐다. 현대차그룹은 18일 “중·단기 수익을 위한 것이 아닌 100년 앞을 내다본 결정”이라고 밝혔다. 재계 일각에선 부지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상상을 뛰어넘는 낙찰가=현대차그룹의 낙찰가액 10조5500억원은 지난해 현대차의 영업이익 8조3155억원보다 많다. 2014년형 쏘나타 2.4 GDI 최고급형 트림인 익스클루시브(2990만원)를 35만2843대를 팔아야 충당할 수 있는 돈이다. 지난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연봉인 56억원을 1884년간 모아야 하는 금액이다.
재계와 부동산 시장은 애초 4조∼5조원 정도로 낙찰가를 예상했다. 부동산 업계에선 한전이 제시한 감정가액도 실제 가치에 비해 다소 높은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다. 삼성전자도 약 4조5000억원을 썼다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런 한전부지(7만9342㎡)를 3.3㎡당 4억3879만원에 사버렸다. 향후 개발에 부지 비용을 제외하고 약 5조원이 더 들 것으로 예상돼 총 투자비는 15조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낙찰가에 깜짝 놀라는 분위기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상상을 초월한 금액”이라며 “현대차가 아무리 자동차에 특화된 랜드마크를 구축한다고 해도 지나치게 높은 가격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전 부지 인근 공인중개사들 역시 생각지도 못한 금액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미래 위한 통큰 투자인가, 인수 급급한 무리수인가=엄청난 베팅을 한 것은 그만큼 현대차그룹에 한전 부지가 절실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특히 정 회장이 한전 부지를 반드시 잡을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판매 글로벌 5위 업체라는 위상에 어울리는 현대차그룹 타운 조성을 숙원사업으로 여겨왔다. 2006년 서울 뚝섬에 110층짜리 신규 사옥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서울시의 층수 규제로 무산된 상태다. 현대차 관계자는 “한전 부지 확보에 실패했을 때 (새로운 부지를 찾기 위해) 치러야 할 기회비용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무리한 투자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현대차그룹은 “미래 가치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강남지역 부동산 가격은 2008년 금융위기 등에도 연평균 9% 상승했다”며 “사업 건립 비용도 입주할 계열사 30여곳이 나눠 8년간 순차적으로 낼 예정이어서 부담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시내에 흩어져 있는 계열사들이 부담하는 임대료는 연간 24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입찰 경쟁에선 이겼지만 무리한 출혈로 되레 손해를 보는 ‘승자의 저주’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현대차그룹이 삼성그룹을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참여가 가시화되자 막판 금액을 최대한 높여 적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과연 그만한 돈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반드시 인수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너무 많은 돈을 쓴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날 현대차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9.17% 내린 19만80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현대차 한전부지 새주인] 상상초월 베팅 왜?… “삼성 의식한 무리수” vs “100년 내다본 승부수”
입력 2014-09-19 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