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사내하청 근로자 934명 정규직으로 인정

입력 2014-09-19 04:18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 근로자 934명이 소송을 낸 지 3년11개월 만에 법원 판결을 통해 정규직 근로자로 일할 수 있게 됐다. 법원은 현대차 측이 불법 파견 형태로 근로자들을 간접 고용해 왔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지금까지 선고된 불법 파견 관련 소송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이에 따라 사내하청 형태로 인력을 운용하며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미뤄 온 제조업체 등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부장판사 정창근)는 18일 강모씨 등 994명이 “현대차의 직접 지휘를 받는 파견근로자임을 인정해 달라”며 현대차와 사내하청업체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들 모두 현대차와 파견근로 관계인 점이 인정된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이미 현대차에 신규 채용된 40명과 소를 취하한 20명을 제외한 934명이 모두 정규직으로 인정받게 됐다. 현대차는 판결이 확정되면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체불임금 231억원을 지급해야 한다. 현행법상 파견근로자가 일한 기간이 2년을 넘으면 회사는 해당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원고들은 모두 입사 기간이 2년을 넘은 근로자들이다.

원고들은 하청업체에 소속돼 현대차 공장에서 정규직 직원들과 함께 일했지만 정규직 근로자들에게 부여되는 혜택은 받지 못했다. 현대차가 ‘하청업체 지휘를 받아 일하는 근로자들은 파견근로자로 볼 수 없고, 회사의 직접 고용 의무도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원고들의 실제 근무조건을 고려할 때 현대차가 이들을 파견근로자로 고용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현대차와 하청업체 간 도급계약서에 하청업체의 업무 범위에 관한 내용이 없었던 점을 근거로 꼽았다. 현대차가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업무 범위를 지정하며 이들을 지휘한 점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또 하청업체 근로자들 중 모범사원을 선정해 표창장을 수여하거나 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한 처우 개선안도 마련했다. 재판부는 “현대차와 하청업체 사이에 묵시적인 근로자파견 계약이 성립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가 소송을 낸 현대차 하청업체 근로자들을 모두 파견근로자로 인정하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이뤄졌던 제조업계의 불법 파견 관행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판결은 기아자동차(520명) 현대하이스코(108명) 삼성전자서비스(1004명) 한국GM(4명) 등에서 일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각각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근로자 측 변호사는 “법원이 모든 공정의 불법 파견을 인정한 것으로, 사실상 사내하청 자체가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대법원은 2010년 7월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업체 근로자 최병승(38)씨가 낸 소송에서 “원고가 현대차의 지휘를 받는 파견근로자임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최씨에 대한 대법 판결은 개별 사례에 불과하다’며 다른 하청업체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1569명은 같은 해 11월 현대차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냈다. 현대차는 지난달 18일 전주·아산공장 비정규직 노조와 2015년 말까지 4000명을 정규직으로 특별채용키로 합의했다. 법원은 현대차와 합의한 일부 하청 근로자들이 소를 취하하자 지난 8월로 예정됐던 소송을 연기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