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법이 다르다. 나는 ‘공부법’(혹은 학습법)이란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편인데, 하나님에 대한 공부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성도들은 주일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는 방법을 선호하지만 내가 사용한 방법을 소개하는 일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저렇게 할 수도 있구나”라는 참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경배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자신의 귀한 자원을 말처럼 제대로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 늘 분주하게 살 수밖에 없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일은 일생의 여러 만남이나 선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한 발 더 나아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점점 자신만의 뚜렷한 관점이나 주관이 서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정확히 알면 알수록 더 잘 믿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까닭은 오랫동안 책을 읽고 집필해 온 경험도 한몫을 했다. 어떤 분야라도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 때면 그 분야의 전체 개요 혹은 얼개를 파악하고 핵심적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해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동안 다양한 독서와 집필 활동에서 내가 갖게 된 하나의 공부법이라 할 수 있다. 전체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부분만 오랜 세월 배운다고 해서 큰 성장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생각도 한몫 거들었다. 전체의 틀이 정리돼 있다면 부분을 공부하더라도 전체 틀 속에서 부분이 어디에 속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설교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독교 교리의 전체 틀을 이해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여기서 작업이라고 해서 무슨 거창한 것은 아니다. 조직신학자들의 저서 가운데서 오랜 세월 동안 좋은 평판을 얻은 책을 중심으로 교리 공부를 차근차근 시작했다. 교리 공부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자신의 전공 분야 이외에 책을 읽는 것처럼 하나님에 관한 책들 가운데 전체를 잘 다룬 책을 읽기 시작하면 된다. 특히 조직신학에 대한 저서들이 큰 틀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다.
“어떻게 그렇게 시간을 내서 그런 공부를 할 수 있어요”라고 묻는 지인들도 있다. 나는 4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것은 한 인간의 세계관에 근본적인 변혁이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변혁이 일어나야지 잘못된 변혁이 일어나는 것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근래에 우리 사회에서 예수님을 올바르게 믿지 못해서 비난을 받는 종파들이나 성도들이 있다. 이는 ‘지식 없는 열심’(롬 10:1∼3)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정신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면 그분에 대해 정확히 알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순도 높은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을 때만이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제공하는 권능의 실체를 체험할 수 있는 가능성도 훨씬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위기가 닥쳤을 때 신앙생활을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지식의 부족도 원인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성경이 제시하는 고난관과 역경관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한 집안의 가장(家長)이 믿기 시작하는 일은 집안 전체가 믿음의 길에 들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가장이 가족 구성원들에게 신앙생활의 올바른 길을 조언할 수 있어야 함을 뜻한다.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팔아서 호의호식하는 사람들도 드물지 않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가족 구성원 가운데 거짓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종파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에도 문호를 개방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이해하는 공부는 큰 기쁨을 준다는 사실이다. 내가 믿는 분과 그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참으로 대단한 분이시구나” 혹은 “참으로 대단한 세계구나”라는 확신을 수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을 믿는 일의 첫걸음으로 구주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지만 곧바로 예수님을 알기 위해 본격적으로 학습에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직접 예수님에 대한 책을 쓰면서 교리체계를 더 정교하게 이해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예수님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체험하는 신비한 경험을 할 수도 있는데, 우선 차근차근 공부해 나가는 노력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공병호<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공병호의 세상 읽기] 신앙과 공부
입력 2014-09-20 0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