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은 흔히 소설보다 한 단계 낮은 장르로 치부된다. 그러나 산문을 써본 사람은 안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문장력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근사한 ‘이야기’가 있어야 읽는 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때론 감동받는다. 그래서 괜찮은 산문집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 문단에 드물게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는 스타작가 김영하(46·사진)가 산문집 ‘보다’(문학동네)를 펴냈다. 2012년 3년여 거주했던 미국 뉴욕에서 돌아온 후 보고 느낀 한국사회의 변화를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와 소설, 드라마와 함께 풀었다. 한국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유머가 돋보이는, 잘 읽히는 책이다. 부산에 살고 있는 그를 18일 전화로 만났다.
작가는 “외국에 있다보니 바깥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으면 결핍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반작용으로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또 “사회적·경제적 불평등, 빈부 문제 이런 것들이 예전보다 첨예해진 것 같다. 그런 것들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였다. 가족 관계라든가 사람 사이의 신뢰 관계도 굉장히 척박해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어 “예전엔 소설만이 지고(至高)의 장르이고 산문은 잡문이라 여긴 적도 있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그냥 산문에도 좋은 게 있고, 소설에도 나쁜 게 있다. 장르의 우열은 무의미하다”고 평했다.
‘보다’는 작가의 새 산문집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이다. 그는 ‘보다’에 이어 ‘읽다’ ‘말하다’ 등 두 편의 산문집을 3개월 단위로 펴낼 예정이다. 21∼22일 서울에서 사인회와 낭독회도 갖는다.
1995년 스물일곱에 혜성같이 문단에 등장한 그는 20년째 글을 써오고 있다. 김영하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아랑은 왜’ ‘검은 꽃’ ‘빛의 제국’ ‘너의 목소리가 들려’ 등 감각적이고 세련된 작품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아왔다.
그는 “나에겐 여전히 계속 쓰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진짜는 지금 뭐하고 있느냐다. 과거부터 몇 년간 뭘 했는가는 의미 없다. 20년이라고 특별히 뭘 하진 않을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데뷔 50년에 하고 싶다”며 웃었다.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오래해온 덕을 보는 것 같다. 2년에 한 권 정도 계속 책을 내다보니 독자들이 작가를 따라올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내 소설을 끝까지 읽고 반가워해주는 독자들이 제일 고마운 존재”라고 말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산문집 ‘보다’ 펴낸 스타작가 김영하 “멀리서 본 한국사회, 불평등·빈부 문제 첨예”
입력 2014-09-19 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