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안게임] 6·25 상흔 안고 1954년 첫 출전… 최윤칠 첫 금메달

입력 2014-09-19 04:37 수정 2014-09-19 15:01
수영의 최윤정(오른쪽·은), 윤희(금) 자매가 1982 뉴델리아시안게임 시상식에서 한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위 사진). 1974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16개를 획득해 4위에 오른 한국 선수단이 귀국 후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테헤란아시안게임 역도 라이트급에서 인상·용상·합계 3관왕에 오른 원신희(가운데)가 시상대에 서 있다(위 사진). 임춘애가 1986 서울아시안게임 육상 여자 8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테헤란아시안게임 수영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따낸 조오련이 카퍼레이드 중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위 사진). '아시아의 마녀' 백옥자가 테헤란아시안게임 육상 여자 투포환 금메달을 목에 건 채 시상대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유남규가 1986 서울아시안게임 남자 탁구 단식 결승전에서 중국의 금메달 후보 강가량을 꺾은 뒤 기뻐하고 있다(위 사진). 한국 마라톤의 영웅 황영조가 1994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며 환호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6·25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1954년. 아시안게임에 첫 출전한 한국 대표팀 선수 57명은 개최지 필리핀 마닐라에서 19개의 메달(금 8, 은 6, 동 5)을 따내며 종합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이 지금까지 아시안게임에서 획득한 메달은 모두 1826개(금메달 617개). 메달마다 우리 선수단의 흘린 땀과 눈물이 오롯이 담겼다.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 최윤칠=1950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3위를 기록한 최윤칠은 1954 마닐라아시안게임 육상 1500m 우승을 차지하며 조국에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을 안겼다. 여자 첫 금메달은 ‘여장사’ 백옥자가 가져왔다. 1970 방콕아시안게임 여자 포환던지기 금메달에 이어 1974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아시아신기록을 세우며 불모지에 가까웠던 여자 포환던지기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아시아의 헤라클레스’ 원신희는 1974 테헤란아시안게임 역도 라이트급 인상(130㎏)·용상(165㎏)·합계(295㎏) 3가지 세부 종목 3관왕에 올랐다. 사격의 박종길과 여자 양궁 김진호는 1978 방콕아시안게임부터 1986 서울아시안게임까지 연달아 금메달을 따내며 나란히 첫 3연패의 주인공이 됐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과 ‘인어’ 최윤희=1970년 방콕아시안게임 당시 양정고 2학년 조오련은 자유형 400·15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수영은 일본에 이길 수 없다’는 징크스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조오련은 4년 뒤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2연패의 기염을 토하며 한국 수영 역사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인어’ 최윤희는 1982 뉴델리아시안게임 배영 100·200m, 개인혼영 200m 금메달을 따며 한국 수영 사상 첫 3관왕의 위업을 이뤘다. 빼어난 수영 실력과 미모로 많은 인기를 누린 최윤희는 은퇴 후 13세 연상 로커 유현상과 결혼해 세간에 화제를 낳기도 했다.

장재근은 1982 뉴델리아시안게임 육상 200m에서 한국인 최초로 21초의 벽(20초89)을 깬 데 이어 1986 서울아시안게임에서 2연패를 거두며 한국 육상 간판스타로 등극했다. “우유 마시는 친구가 부러웠다”는 등 화제 어록을 남긴 임춘애는 서울아시안게임 육상 800·1500·3000m 금메달을 휩쓸며 잠실메인스타디움의 5만 관중과 텔레비전 중계를 지켜보던 국민들을 흥분과 감격의 소용돌이에 빠트렸다.

◇만리장성을 정복한 한국 탁구·농구=서울아시안게임 남자 탁구 대표팀은 당시 세계 최강 ‘중공 탁구’와 맞붙었다. 1986년 9월 24일 열린 단체전 결승은 5시간 18분에 걸친 사투로 인해 9시 뉴스도 연기될 정도였다. 한국팀 마지막 주자 안재형은 7번의 동점 접전 끝에 후이준을 2대 1로 물리치고 그대로 코트 위에 쓰러져 엉엉 울었다. 당시 대표팀 막내 유남규도 개인전에서 중국 장지아량과 후이준을 차례로 꺾으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만리장성은 부산아시안게임 농구 결승전에서 또 한번 무너졌다. 한국 대표팀은 신장 229㎝의 센터 야오밍과 ‘중국의 조던’ 후웨이동을 앞세운 중국팀의 공세에 밀려 경기 종료 25초까지 7점차(90-83)로 뒤지고 있었다. 패색이 짙어지는 상황. 그러나 종료 5초 전 터진 현주엽의 극적인 2점 골밑슛(90-90)으로 경기는 연장전에 돌입. 결국 2점차 승리(102대 100)를 거두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인천=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