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랄 때는 욕을 욕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흉악하고 징그러운 욕을 일상용어로 알면서 듣고 자랐다. 내 주변 어른들은 “미친○”이나 “지랄한다” 정도는 너무 고운 말이었다. 욕은 상대를 얕보거나 무시하고 부모를 저주하거나 잔인하게 죽는 과정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욕은 더러는 사랑의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내성적인 사람들이 자기표현에 익숙하지 않아도 에둘러 욕으로 관계를 형성하면 상대도 친절의 또 다른 표현으로 들었던 것이다.
나는 욕이라는 것이 진정의 가면으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그러다가 입버릇으로 발달해 잘못 기능을 잃어버려 미움이나 저주, 인격모독으로 변질되어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궁금하고 관심이 있는 부분을 실제 경험으로는 어려워 욕으로 바꾸어 간접경험으로 유도하는 심리적 현상이 욕일 경우가 많지 않았을까. 말은 인간이 가진 것 중에 최고의 특권이며 선물이다. 이 소중한 말의 사용법에 요즘 큰 문제가 생긴 것이다. 특히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나이가 주는 초조감으로 괴로운 젊은이들, 청소년들이 욕으로 받는 상처는 몸과 마음에 잔인하게 저장되어 성격 형성까지 방해할 것이다. 곱고 좋은 말이 스스로에게도 위로가 되는 것이라면 청소년들의 욕은 가장 먼저 자신을 괴롭히고 자신에게 상처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본 기사에 두 개의 꽃나무를 각각 다른 방에 놓고 한쪽은 낮은 음악을 흐르게 하고 한쪽은 욕을 시간마다 퍼부었는데 욕을 들은 꽃나무는 결국 시들어 죽었다는 보고서가 있었다. 사람이라고 다르겠는가.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무기가 없을 때 나무를 자르는 방법도 흉한 저주였다. “우리는 너를 싫어해.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며칠간 많은 사람들이 욕을 퍼부으면 나무가 실제로 시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폭언이 생명에 끼치는 영향은 이런 것이다.
경기도 어느 고등학교의 국어시간에서는 욕의 어원을 짚어가는 욕 수업시간을 가졌다. 욕을 알고 부끄러웠다는 학생이 많았다. 충격적이고 혐오감이 심했다고 자백하기도 했다. 욕설상호평가제를 실시한 이 학교에서는 한 학기 동안 욕을 얼마나 했는지 점수에도 반영했다. 자신이 얼마나 욕을 하는지 기록해 보고 얼마나 놀랐겠는가.
어릴 적 듣던 욕은 많이 사라졌다. 그런데 그 욕이 어느 심리에서 다시 솟아나 은근하지만 야욕의 행동으로 돌출되는지 민망한 이야기들이 신문을 메우고 있다.
신달자(시인)
[살며 사랑하며-신달자] 욕이 욕을 부른다
입력 2014-09-19 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