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법조계의 가장 뜨거운 주제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1심 판결이었다. 원 전 원장은 국가정보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는데, 1심 재판부인 이범균(50·사법연수원 21기) 부장판사는 공직선거법은 무죄, 국가정보원법은 유죄로 판단했다. ‘국정원이 정치 관여는 했는데, 대선에 개입한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였다. 판결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검찰이 17일 항소를 결정한 만큼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는지 여부는 다시 2심 재판부의 몫으로 넘어갔다. 내년은 돼야 항소심 결과를 볼 수 있을 듯하다.
판결 이후 다양한 평가가 나왔다. ‘재판부가 공직선거법 85조 1항인 공무원 선거운동 범위를 좁게 해석했다’는 건조한 평가부터 ‘재판부가 현실과 타협했다’는 삐딱한 평가도 있었다. 가장 극단적인 평가는 김동진(45·사법연수원 25기) 부장판사의 글이었다. 그는 “원세훈 무죄 판결은 사심을 담아 쓴 판결”이라며 이 부장판사를 공격했다. 김 부장판사의 글을 놓고서도 ‘할 만한 얘기를 했다’거나 ‘판사의 본분을 망각한 인신공격’이라는 엇갈린 평가들이 나왔다.
판결이 나온 뒤 현직 판사들에게 판결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대부분 판사들이 말을 아꼈다. 그래도 공통되는 말이 있었다. “그렇게 판결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의견이었다. 서울에 근무하는 A부장판사는 “선거운동의 개념을 어떻게 볼 건지 해석의 영역으로 들어간 것인데, 너무 자세하게 현미경 들여다보듯이 따지니 그렇게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B부장판사는 “크게 봐야 할 것들도 세심하고 꼼꼼하게 보게 되고, 외길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판사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이범균 부장판사처럼 해석할 수도,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만일 김 부장판사가 1심 재판부였다면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는 유죄가 나왔을 수 있겠다. A부장판사나 B부장판사가 1심 재판부였다면 또 다른 결과도 가능했을 듯하다. 이 부장판사가 선거법 개입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면 논란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무죄를 판결했다고 비판받을 것도 아니고, 유죄를 판결했다고 비판받을 일도 아니다.
물론 국민들이 보기에 상황이 이상하다. 정치 개입은 했는데 선거 개입은 하지 않았다는 논리 자체도 언뜻 이해되지 않고, 한 판사는 무죄를 판결했는데, 다른 판사는 유죄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람이 달라지면 판결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혹이 생기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정원 대선·정치 개입 의혹사건은 2013년을 뒤흔들었던 사건이다. 대한민국의 엄청난 에너지가 이번 사안에 소모됐다. 정치권은 격렬히 대립했고, 국론도 갈렸다. 박근혜 대통령도 정통성 시비에 시달리면서 임기 첫해를 힘들게 지냈다. 이런 정치적 거대담론이 결국 이 부장판사의 해석과 판결로 1차 결론 내려졌다. 우리 사회가 너무 큰 결정을 이 부장판사에게 떠넘긴 것은 아닐까.
어느 순간부터 검찰과 법원 내부에서 “정치권과 사회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고 있다”는 볼멘 목소리들이 끊이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합의하고 타협해야 할 사안도,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들이 서초동으로 달려오고 있다. 책임을 검찰과 법원에 미뤄놓고는, 결론이 내려지면 다시 시비가 끊이지 않는 현상이 되풀이된다.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판단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해석과 판결에 맡겨야 할 만큼 우리 사회의 갈등 해결 구조는 후진적이다. dynam@kmib.co.kr
[뉴스룸에서-남도영] 원세훈 재판 결과를 둘러싼 논란
입력 2014-09-19 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