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에게나 평생 동고동락하는 존재가 있다. 그는 이 존재와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가깝게 지낸다. 부모나 아내가 우리 곁을 떠나는 아픔이 있어도 이 존재는 끝까지 나와 함께 한다. 이것은 인간과 밀접한 존재이기에 항상 관심을 갖고 귀히 여김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무심히 대한다. 그러다가 이것에 문제가 생겨 고통을 받고 나면, 그때야 중요성을 깨닫고 그간 홀대했던 자신의 어설픈 행보를 통절히 반성하기도 한다. 이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
사람들은 이처럼 평생을 자신과 밀접하게 산 마음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것이기에 내 마음대로 될 거라고 생각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을 부리며 산다. 대개는 마음이 존재하는지조차도 모르고 그냥 생활에 바빠 지나치기 일쑤다. 또 사람들은 주변의 풍조와 흐름에 젖어 자기 마음에 대해 별 문제의식 없이 살아가기도 한다. 자신에게 밀려오는 당장 처리해야 할 일 때문에 자신이 흘러가고 있는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문제의식을 못 느끼고 살아갈 수도 있다. 마치 냄비 속의 개구리가 물이 점점 데워지는데도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서 상황의 위급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기고 이로 인해 마음고생이 시작되면 이의 존재를 절감하게 된다. 마음이 답답해지거나 열이 나는 상태로 인해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상태까지 가기도 한다. 좀 더 심해지면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다. 이쯤 되면 새삼 자기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행복하지 못하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자지 말고 깨어 있으라고 권면한다.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살전 5:6)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
그래서 깨어 있음이 중요하다. 깨어 있음은 무엇보다 마음이 현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마음이 과거의 일에 머물러 지나간 일들에 ‘이랬으면 좋았을 걸’ 하다 보면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미래의 일에 신경 쓰다 보면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불안에 휩싸이기 쉽다. 그러나 현재에 머물러 깨어 있으면 현재에 현존하시는 주의 얼굴을 볼 가능성이 커진다.
깨어 있음은 마음이 현재에 머물러 지금 마음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빠지지 않고 알아차리는 일이다. 마음이 지금 ‘상쾌하네’ ‘울적하네’라는 느낌을 알아차린다. 내 몸의 느낌이나 몸속으로 들어오는 공기를 알아차린다. 마음은 대체적으로 해야 할 일들과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느라 지금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흘려보낸다. 그러나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지금 내 마음의 느낌이 어떤지 알아차리고 나면 마음에 생기가 돋는다.
“주의 얼굴(presence)을 항상 구하라”(시 105:4)는 성경말씀은 실천 가능하다. 깨어 있어 마음이 호수의 수면처럼 고요하고 잠잠하게 되면 하늘의 구름이나 주변의 산과 숲, 일상사를 통해서 주의 얼굴이 수면에 비치게 된다. 마음이 답답하고 눌려 있다고 싶을 때마다 현재에 깨어 있어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일을 반복하노라면 감사와 행복이 깃들게 된다.
권명수 교수(한신대 목회상담)
[시온의 소리-권명수] 깨어 있음의 신비
입력 2014-09-19 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