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종이 한지(韓紙)에는 글만 쓰지 않았다. 예쁜 색깔을 입혀 색지도 만들었고, 이 색지를 나무로 만든 뼈대에 발라 고운 함도 만들었다. 세종실록에 갑옷을 종이로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가늘게 꼬아내면 끈이 되었고, 이 끈을 안팎으로 고리를 꿰어 형태를 갖추면 지승함이 되었다.
한지의 으뜸가는 특성은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질김에 있다. 석가탑 보수 때 나온 신라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생생한 증거가 된다. 닥나무 질긴 결을 종이에 그대로 살려낸 기술 때문이다. 한지로 만든 공예품을 보면 장수의 상징인 남산의 소나무와 병풍 속 거북이와 같은 생각이 든다.
올해 ‘제39회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 수상작인 이 ‘지장서류함’은 품격이 있다. 덕성여대박물관 소장인 1793년 명문의 지장함을 기본 틀로 해서 대나무로 형태를 짜고 안팎으로 종이를 발랐다. 무려 45겹을 덧바르고 살충효과를 위해 타닌 성분이 있는 밤나무 껍질로 물들였다. 그리고 다시 옻칠을 하고, 그 위에 이은 부분을 종이끈으로 바느질했다. 가벼우면서 고급 가죽제품과 같은 느낌을 준다. 윤서형(54) 수상자는 “한지공예는 무늬가 다양해야 아름답다고 하지만 저는 대나무 뼈대와 한지만으로 자연의 숨이 밴 질감을 내려고 했다”고 말한다. 10월 7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삼성동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전시된다.
최성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
[톡톡! 한국의 문화유산] 자연의 숨결 살린 종이 서류함
입력 2014-09-19 03:12 수정 2014-09-19 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