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등단해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 이후 일곱 권의 시집을 내놓은 시인 이성복(62·사진). 어느새 그에겐 흰 머리카락이 수줍게 자리 잡았다. 40년 가까이 고통스러운 시 쓰기의 외길을 걸어온 그가 지난 시간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시와 산문, 대담을 세 권의 책으로 엮었다.
76∼85년 미간행시 150편을 묶은 시집 ‘어둠 속
시’, 다양한 사유를 엮은 ‘고백의 형식들’, 그리고 서른 해 동안 이뤄진 열정적인 대화를 모은 ‘끝나지 않은 대화’가 그것. 출판사 열화당이 문학 분야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내놓은 첫 작품이다.
시인은 자신의 황금기로 79년을 꼽는다. 이듬해 파격적인 첫 시집으로 문단에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1979년에 모든 것을 다했고 오직 그 시절만이 아름답다”면서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 ‘남해 금산’(1986)에 못 실린 시들을 이번에 새로 묶어 펴냈다고 밝혔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말대로 이성복의 ‘풍경’이 자리 잡은 때이다. 청년 이성복에게는 시가 전부였다.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 살았던 그의 가슴 속에는 ‘사람이 시 없이 살 수 있는가’하는 물음이 들끓고 있었다.
그 시절 그는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비정상의 도시에서 날 선 언어로 아픔을 토해냈다. ‘아무리 내가 어리석고 나의 시대가 어리석어도 할 말은 있다 카프카, 내 말 좀 들어봐 너처럼 누이들을 사랑한 사람은 없을 거다 누이들은 실험용 몰모트다(중략) 어머니, 당대의 씨암탉이시여, 당신이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으니 기껏, 어지러워요, 어머니!’(‘병장 천재영과 그의 시대’ 중)
시집에선 시퍼렇게 살아 있는 감각적인 언어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산문집 ‘고백의 형식’에는 1976∼2014년 씌어진 산문 21편이 담겼다. 이 책이 품고 있는 사유는 결국 나는 누구인가, 삶은 무엇인가, 이 세상은 어떠한 것인가하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결국 시가 하는 일은 인생의 진실을, 즉 ‘불가능’의 자리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의 자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문학이라는 것은, 또 문학의 진실이라는 것은 그 꺼풀을 벗겨내는 것입니다.’(‘불가능에 대한 불가능한 사랑’ 중)
대담집 ‘끝나지 않은 대화’에는 1983∼2014년 이뤄진 대담 16편이 들어있다. 대개 시인이 새 시집을 발표했을 무렵 이뤄진 것으로 당시 그가 품고 있던 생각을 생생히 들어볼 수 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책과 길] 30여년 만에 되짚어본 그 시절 청년 시인의 내면풍경
입력 2014-09-19 0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