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보수 정부와 지방교육청 간 갈등이 어느 때보다 첨예하다. 자사고 지정 취소, 전교조 교사 징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등 핵심 사안마다 대결구도가 펼쳐지고 있다.
부산시교육감을 세 차례 연임하고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을 지낸 뒤 현재 교육부 정책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설동근(66) 부산동명대 총장을 만나 교육계 갈등의 해법이 무엇인지 물었다. 17일 국민일보 대회의실에서 만난 그는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며 "선거에서 이겼다고 해서 진영논리에 매몰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교조 출신 교사들을 중용하는 진보 교육감들의 인사 파격을 비판한 것이다.
-진보 교육감들이 자사고 지정 취소를 하면 교육부가 반려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자사고 문제의 본질과 해법은 무엇인가.
“자사고는 잠재력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반고의 3배 이상 비싼 학비를 내고라도 자사고에 자녀를 보내겠다는 학부모들이 있다. 일부 자사고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일반고로 강제 전환시키는 것은 문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사고를 해보겠다는 학교와 교사들의 의욕을 꺾는 일이다. 일반고를 자사고 수준으로 끌어올려야지, 하향평준화를 시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사고 운영이 어려운 법인은 알아서 일반고로 전환하면 된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운영성과 평가를 6월에 실시했는데 교육감이 바뀌었다고 해서 재량평가 항목을 추가해 재평가했다. 이것은 정당한 행정 행위가 아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주장하고 있는 ‘교육감의 재량권’이라는 것은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해야 객관성·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
-전교조 미복귀 교사 징계를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기다리는 게 옳은가. 법외노조 요인을 치유하는 게 우선인가.
“위법 규약을 시정하라고 하는 고용노동부의 요구를 전교조가 묵살해서 교원노조법상 인정받지 못하는 법외노조가 됐다. 전교조는 다른 노조와는 다르다. 학생들을 교육하는 교원노조라면 더욱 모범을 보여야 한다. ‘교육’은 우리 사회의 마지노선이다. 교육만은 국민적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
-‘9시 등교’가 진보 교육감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어떻게 보나.
“너무 성급하다. 9시 등교가 곤란한 맞벌이 부부 자녀들에 대한 배려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 교육정책은 예측 가능해야 한다. 진보 교육감들이 현실적합성을 따져보지 않고 선거공약을 밀어붙이는 현상이 우려스럽다.”
-이념 대결의 중립지대여야 할 교육감 선거가 왜 늘 보수-진보 싸움으로 끝나는가. 일부에서는 직선제 폐지를 주장하는데, 선거제도에 문제가 있는가.
“직선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에 대해 교육감들이 자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교육감에 당선됐다고 해서 함부로 정책을 바꾸고 원칙에 어긋나는 인사를 해서는 안된다.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 선거를 통해 선택됐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자신의 생각과 이념을 원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직선제 폐지를 거론하는 것은 제도시행 역사가 짧아 시기상조다. 다만 2011년에 도입하려다 무산된 ‘공동등록제’가 한 가지 대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감 후보자가 시·도지사 후보와 정책연대를 할 경우 후보 번호를 같이 쓰는 것이다. 이는 시·도지사에 교육감이 종속되는 러닝메이트제와는 다르다. 당시 세종시 선거에 시범적으로 도입해보려고 했는데 야당이 반대했다.”
-학업중단 위기학생이 해마다 6만∼7만명씩 발생한다. 전국 교도소에 수용된 성인 재소자가 4만3000여명인데 이보다 많은 수의 청소년이 학교와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있다. 범죄의 유혹과 생존의 불안에 시달리는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학교 부적응 위기학생은 우리 교육의 큰 숙제다. 궁극의 해법은 관심과 사랑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적응을 못하는 아이들에게 지금보다 3배 정도 많은 관심과 따스한 사랑을 보여준다면 아이들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들이 교직을 성직이라 생각하고 학생 한 명, 한 명을 따뜻하게 감싸안아야 한다.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라 하더라도 또 다른 재능이 있다. 그런 재능을 발견하고 북돋아주는 게 교육이다. 학교 부적응 위기학생들을 지원하는 위클래스(Wee class), 위센터, 위스쿨이 확충되어야 하고, 대안학교도 늘려 굳이 공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열어가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대학가에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들이 생겨나고 있고, 대학마다 생존전략을 세우느라 몸부림이다. 동명대는 어떻게 하고 있나.
“특성화를 통한 차별화가 살 길이다. 백화점식으로 운영한다면 대학이 살아남을 수 없다. 동명대는 정부의 특성화사업과 별개로 자체 특성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올해 11개 사업단을 선정해 향후 5년간 50억원을 지급할 계획이다. 직업세계의 변화를 예측하고 분석하라고 주문했다. 분석 결과에 따라 학문 융복합을 시도하고 교육과정을 개발해야 한다.
2년 전 동명대 총장에 부임해 보니 구성원들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걸 느꼈다. 전 교직원을 모아놓고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의 동영상을 10분간 보여줬다. 그러면서 ‘솔개’ 이야기를 했다. 솔개는 새 중에 드물게 60∼70년을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30년 정도 살면 부리는 가슴에 닿을 만큼 자라 먹이를 찢지 못하고, 날개는 축 처져 제대로 날지 못하고, 발톱은 먹이를 움켜쥐지 못할 만큼 둔해진다. 안간힘을 써야만 겨우 산 중턱에 둥지를 틀 수 있다. 하지만 이때 솔개는 바위를 쪼아 자기 부리를 깨뜨린다. 깨진 부리가 빠지면 새 부리가 나고, 발톱이 빠진 자리에 새 발톱이 자란다. 새롭게 탄생한 몸으로 30년을 더 살아간다. 혁신하지 않으면 타이타닉처럼 동명호도 침몰한다. 뼈를 깎는 개혁을 하면 솔개처럼 다시 비상할 수 있다. 그렇게 역설했다. 이후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정부 특성화사업에도 선정되고, 취업률도 올라가고 각종 지표가 좋아지다 보니 패배의식이 사라지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퍼져 있다.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도 눈에 띄게 줄었다.”
전석운 사회부장 swchun@kmib.co.kr
[데스크 직격 인터뷰] 전석운 사회부장이 설동근 부산동명대 총장을 만나다
입력 2014-09-19 0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