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추석 아침 일본 사카이시의 노인요양시설 ‘고향의 집’. 재일동포와 일본인 노인들이 함께 사는 이곳에 여느 한국 가정처럼 차례상이 차려졌다. 송편과 쌀밥, 한국의 사과와 배가 가지런히 놓였다.
“고향에는 못 가지만 이렇게 차례라도 지내니까 마음이 편안해지고 좋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최순옥(95) 할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일본인 마쓰나가 스마(92) 할머니도 “한국에서는 이렇게 상을 차리는 거야? 대단하네. 조상님들한테 기원하기 위한 거라고? 그럼 나도 한번 해볼게”라며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했다. 숭실공생복지재단이 18일 전한 일본 고향의 집 어르신들의 추석맞이 행사 모습이다.
재일동포 노인들의 추석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다. 평소 입어보지 못하던 치마저고리를 입고, 윷놀이도 하며 다같이 고향의 정취를 나눴다.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도 차례상 앞에서는 경건하게 두 손을 맞잡고 기도했다. 그들에게 추석은 조금이라도 과거와 고향을 기억하게 하는 연결고리인 셈이다.
같은 날 일본 고베에 위치한 또 다른 ‘고향의 집’에도 갈 곳 없는 한국인 노인들이 모여들었다. 박임선(83) 할머니는 “한국에 있는 친척들이 명절마다 찾아왔는데 이제는 건강이 약해져 서로 만날 수가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판문(91) 할아버지는 “가난했던 아버지께서 쌀을 올리지 못하고 보리밥을 올린 것이 한이 돼 돈을 벌기 위해 일본에 건너왔다”며 “고향인 경상남도 단성군(지금의 산청군)에 있는 조상 묘소가 어떻게 돼 있는지 걱정된다”고 했다.
일본 교토의 고향의 집에서는 전통놀이가 한바탕 펼쳐졌다. 자원봉사자들의 흥겨운 사물놀이가 끝나자 송편 만들기 행사가 진행됐다. 한복을 입은 어르신들을 위한 기념사진 촬영도 이어졌다. 최춘자(91) 할머니는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네.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는 한국에 가서 명절을 지냈는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한국에 가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차례를 지내며 하늘나라에 있는 어머니께 지켜봐 달라고 기도했다. 이맹련(86) 할머니는 자원봉사자들이 펼치는 사물놀이를 지켜보며 “오랜만에 한복도 입어보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낼 수 있어 기쁘다”고 웃었다.
재일동포 어르신을 위한 고향의 집은 1989년 사카이를 시작으로 2001년 고베, 2009년 교토까지 3곳이 설립됐다. 숭실공생복지재단은 내년에 준공될 도쿄를 포함해 재일동포 어르신이 많이 거주하는 일본 7개 지역에 1000여명 수용 규모로 고향의 집을 건립할 계획이다. 65세 이상 재일동포 11만4313명 중 상당수는 국적과 경제적 형편 때문에 소외계층이 돼 있다. 현재 고향의 집에 머무는 노인은 238명이며 이 중 재일동포는 120명이다. 또 105명은 생활보호대상자다.
김동우 기자
[화해와 평화를 위한 공생의 길] “고향 생각 많이 나네…” 전통놀이로 그리움 달래
입력 2014-09-19 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