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평화를 위한 공생의 길] ‘가족과의 명절’ 꿈꿀 수 없는 아이들에 ‘달콤한 사랑’을 건네다

입력 2014-09-19 03:01
전남 목포시의 아동양육시설인 공생원 앞마당에 지난달 29일 아이스크림을 실은 트럭 ‘핑크카’가 도착했다. 즐거운 표정의 공생원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아이스크림 빙수 만들기 행사에 참여한 목포 공생원의 아이들.
그토록 기다리던 분홍색 트럭이 도착하자 5∼10세 어린이 20명이 “와∼” 하고 뛰어나왔다. 자원봉사자들이 달려들어 ‘핑크 카’에서 아이스크림 박스 수십개와 빙수기계를 꺼내 예배실로 옮기기 시작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3시, 전남 목포의 아동양육시설 공생원 아이들은 이렇게 생애 첫 ‘아이스크림 파티’ 행사를 가졌다.

예배실에는 빙수기계 4대와 초콜릿 아이스크림, 별 모양 초코과자 등이 근사하게 차려졌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받아든 아이들은 이내 빙수기계 앞으로 달려들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갈아주는 얼음을 받아들고 초코시럽과 토핑을 얹어 직접 아이스크림 빙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직 숟가락질을 잘 못하는 지후(가명·4)도 양 볼에 초콜릿을 묻혀가며 열심이었다. 다음 행사를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운동장으로 모이자고 재촉해도 아이들의 엉덩이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 행사는 공생원을 운영하는 숭실공생복지재단이 추석을 앞두고 마련한 이벤트였다. 모든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하는 명절에 부모가 없는 공생원 아이들을 위해 대학생 봉사자 10여명과 SPC그룹 해피봉사단원 5명이 힘을 합쳤다.

30여분간 빙수를 만든 아이들은 앞마당에서 자원봉사자와 함께 ‘런닝맨’ 게임을 시작했다. TV 예능프로그램의 이름을 딴 이 게임은 일종의 술래잡기 놀이다. 술래가 된 자원봉사자들이 선물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몸에 붙이고 도망가면 아이들이 붙잡아 종이를 뗀 뒤 그 선물을 받는다.

게임이 시작되자 인근 육아원 아이들까지 가세해 40여명 아이들과 15명 자원봉사자가 열띤 추격전을 벌였다.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입에는 사탕을 문 아이들이 쉼 없이 마당을 뛰어다녔다.

술래였던 공생원 출신 대학생 박영란(22·여)씨는 “앞마당을 일곱 바퀴는 뛴 것 같다. 종이를 붙이기가 무섭게 1분 만에 빼앗겼다”며 숨을 헐떡였다. 그는 “봉사한다는 느낌보다 함께 논다는 기분이 든다. 이런 행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생원 출신인 이안영(70)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끌어안으며 “얼굴에 한점 어둠이 없다”고 기뻐했다. 그는 아이들이 종이를 찾기 위해 오르는 언덕을 바라보며 “내가 저 나이 때는 이곳이 돌산이었다. 그 돌을 캐서 부싯돌을 만들어 팔아 반찬도 사고 그랬지”라며 웃어 보였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56세에 그를 얻은 뒤 형편이 어려워지자 공생원에 맡겼다. 식당과 제과점 등 밑바닥부터 일을 시작해 지금은 부동산업을 하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 6시간을 운전해 온 그는 “공생원이 나에게는 고향 집”이라며 “지금 아이들을 보면 어릴 적 내 생각이 난다. 손주 같은 내 자식들”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좌옹 윤치호 전도사가 1928년부터 기독교정신으로 7명의 부모 잃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 것이 공생원의 시작이다. 1951년 6·25전쟁 당시 아이들의 식량을 찾아 나섰다 행방불명된 윤 전도사를 대신해 부인인 일본인 윤학자(다우치 지즈코) 여사가 한국에 남아 아이들을 키웠다. 지금까지 4000여명이 이곳에서 성장했다. 지금은 66명이 선생님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공생원에서는 체벌이 없다. 정애라 공생원장은 “체벌은 좋은 교육 효과를 낳지 못한다”며 “학생회에서 학생들 스스로 항목을 정해 질서를 지키지 못했을 때 벌금을 낸다든지 청소 등의 자원봉사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아이들은 주변의 선후배 시선이나 인정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학생들 스스로 규칙을 정해 지키도록 하는 것이 체벌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243개 아동양육시설에 있는 아이들은 1만4700명에 달한다. 보건복지부에서 양육시설에 지원하는 금액은 어린이 한 명당 월 12만1700원에 불과하다. 아이들의 재능을 키워주고 자립을 돕기에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숭실공생복지재단 이경림 부회장은 “많은 아이들이 심리적으로나 사회적, 가정적으로 분리의 상처를 겪고 있어 섬세한 도움이 절실하다”며 “아이들이 더욱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양육시설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각별한 관심과 나눔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목포=글·사진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