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24) 아르헨티나 산타 로사에서

입력 2014-09-20 03:10
휠체어를 타고 아내와 딸과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에서 그의 장애는 더 이상의 시련도 아픔이 되지 않는 듯했다.

뜨거운 피가 흐르는 남미의 찬양이 열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악보도 없이 연주하는 까닭에 가끔 음계가 흐트러지기도 하지만 더 가다듬어지는 목소리만으로도 하나님의 깊은 사랑에 젖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중부 시골마을 산타 로사(Santa Rosa)에 머문 때가 2009년 8월. 주일 오후 예배에 참석했다. 교인들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따뜻하게 환대해 주었다.

처음 본 얼굴에 먼저 웃음을 건네는 모습, 낯설어하는 행동에 세심하게 배려해 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무관심이 되레 편하다며 인사조차 건네지 않는 한국 교회와 달리 그곳에선 한 명 한 명이 내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만난 이들이 몇 년을 같은 공간에서 같이 예배만 드린 이들보다 ‘주 안에 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더 들어버린 이유는 뭘까. 몇 곡의 찬양을 따라 부를 수 있었으므로 나 역시 예배에 대한 사모함으로 점점 마음에 온기가 가득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기척에 흘끗 뒤를 돌아본 나는 처음 보는 남자가 격의 없이 보내는 눈빛에 나도 모르게 눈웃음으로 인사했다. 그리고 그에게 아주 작은 메시지가 있음을 순간적으로 직감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남자에게 다가가 포옹과 키스로 인사하며 예배를 참여하는 그를 맞았다. 내가 본 건 그의 움직임이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걸을 수 없는 장애인이었던 것 것이다.

“차로 한 시간 떨어진 곳에서 매주 온답니다. 무척 성실하고 착한 남자예요.”

휠체어가 낯설어 그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보니 한 아주머니의 담백한 칭찬이 이어졌다.

“비록 몸은 아프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깊지요. 몸이 불편한 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책임을 다하는 태도를 보면서 오히려 다른 이들이 삶의 격려를 받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중에 나는 또 한 번 마음이 뭉클해지고 말았다. 뒤이어 손녀가 할머니를 부축하며 함께 예배에 온 것이다. 지병 때문인지 그녀는 몹시 비만했었고 때문에 한걸음 한걸음이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느린 걸음을 10대 손녀는 대견하게도 인내하며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장면에 시선이 머무는 것은 이제는 십자가 아래에서조차 점점 보기 힘들어져 버린 우리의 잃어버린 어떤 마음이 아니겠냐는 생각 때문이리라.

나는 몸이 불편한 이들이 어느 계층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그 어느 곳보다 사랑이 가득해야 할 작금의 한국 교회에서조차 우리 중 누군가 조금만 핸디캡을 가져도 선입견으로 그리 환대받지 못하지 않는가. 다르다는 것을 사랑 안에서 온전하게 보지 못하고 불편하고 틀린 것으로 간주하는 의식들이 참으로 부끄럽고 미안하다. 지속적인 관심의 부재 속에 어쩌다가 진행되는 프로그램 한 번으로 장애인들의 아픔을 감히 헤아려 판단한다는 건 지나친 경솔함이 아닐까.

나는 예배 전부터 이미 은혜를 받아 버렸다. 그러니 예배 내내 왜 이 교회가 사랑이 넘치는지도 말씀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날 예배 말씀은 서신서였지만 나는 일부러 성경을 들춰가며 가만히 들여다본 말씀에서 하나님의 공평하신 사랑을 다시금 찬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마 15:30) 어쩌면 우리는 모두 마음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랑 없는 그리스도인일지도 모른다.

문종성(작가·vision-m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