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책] 억대 그림값으로 매겨진 작품세계의 본질

입력 2014-09-19 03:18

격정적인 붓터치의 황소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이중섭(1916∼1956). 한국 현대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그에게는 늘 ‘천재화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하지만 그의 생애가 제대로 규명된 적은 별로 없다.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나 식민지 백성으로, 피란민으로,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채 외롭게 살아가던 그는 1956년 9월 6일 서울 서대문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미술사학자인 저자는 “이중섭이 세상을 떠난 다음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이 만들어낸 이중섭 신화는 이중섭이 아니다”라고 역설한다. 실체는 사라지고 환상만 남아 천 개의 모습으로 변신을 거듭한 이중섭의 삶을 추적하고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바로잡는다. 일본 도쿄미술학교가 아닌 제국미술학교에 진학한 것은 투철한 민족정신 때문으로 알려졌지만 상대적으로 입학이 쉬웠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저자는 삶의 고비마다 수많은 그림을 남기고 생애를 통틀어 온전히 그림 하나만 붙들고 살았던 이중섭의 인생을 복원하면서 종종 감상적으로 소비되고 억대 그림값으로 매겨진 이중섭 작품세계의 본질을 파고든다. 이중섭의 작품 350여점을 시대와 공간별로 정리했다. 참고문헌의 출처 정보를 70여 쪽에 걸쳐 주(註)로 밝힘으로써 이중섭 아카이브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게 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