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운동가로, ‘재벌 저격수’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안철수 의원의 ‘경제 브레인’으로 유명한 장하성(61) 고려대 경영대 교수가 ‘한국 자본주의’를 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 한국어판이 출간된 지 나흘 만에 나온 이 책은 앞으로 한국에서 전개될 불평등 논의에서 피케티의 책보다 더 자주 언급될지 모른다. 피케티 책이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들의 불평등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장하성의 책은 한국의 불평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두 책은 철학적으로 정의론을 바탕으로 하고, 통계와 수치를 통해 불평등의 현실을 입증하고, 자본주의 교정 수단으로서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등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나 불평등의 원인과 해법을 둘러싸고는 차이를 보인다. 피케티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상회하는 것이 불평등의 원인이라고 분석한 반면, 장하성은 한국에서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하회해왔다며, 국민총소득 중 노동분배가 너무 적은 걸 원인으로 들었다. 해법에 대해서도 피케티는 세금 등을 통한 2차적 보정에 주목하는 반면, 장하성은 임금과 고용 같은 1차적 분배부터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 교수는 지난 16일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는 팩트를 너무 중시하지 않는다”며 “책을 쓴 가장 큰 이유도 그런 답답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식인들이 명백히 틀린 사실을 반복적으로 얘기하고 그게 일반인들에게 그대로 수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관계없는 사실을 가지고 한국의 문제를 진단하는 경우도 너무 흔하다. 신자유주의 비판이나 복지 논쟁, 외국자본의 ‘먹튀’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신자유주의는 시장경제를 오래 해온 선진국들의 문제다. 우리는 시장경제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데, 툭하면 신자유주의 탓을 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복지가 축소되었다는 것도 그동안 복지가 없었던 한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또 외국인을 적으로 삼고, 그것이 애국적으로 여겨지는 풍토도 문제다. 한국 경제가 개방경제를 하지 않고 생존이 가능한가?”
장 교수는 책에서 한국 경제를 둘러싼 수많은 얘기들 속에서 뭐가 사실이고 거짓인지 자료와 수치들을 통해 구분해 낸다. 예컨대, 한국은 규제 왕국인가, 투자가 부족해서 성장이 지체되고 있는가, 주주 배당 때문에 임금이 상승하지 못했다는 말은 사실인가, 삼성전자가 외국 자본에 인수·합병될 가능성이 있는가, 사내 유보와 임금 배분 중 어느 것이 더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 등을 따져본다. 한국 경제의 현실과 실체를 조명하는 책이 결국 불평등 문제로 나아가게 되는 건 어떤 이유일까?
“오랫동안 보통 국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국민들의 삶이 국가의 발전과 같이 가야 되는데, 그게 괴리가 생겨버렸다. 국민들은 경제성장을 했다고 하는데 나하고 뭔 관계가 있나? 심지어 경제성장을 왜 해야 돼? 이런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책에 드러난 한국의 불평등 상황은 꽤나 심각하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 동안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8%를 기록했으나 실질임금 증가율은 2.1%에 그쳤다. 같은 기간 1인당 국내총생산은 38.8% 증가했으나 실질임금은 23.2% 늘었을 뿐이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의 노동소득분배율은 공식 통계가 집계된 197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노동소득분배율은 1998년 80.4%였으나 2012년 68.1%까지 낮아졌다.
장 교수는 근래 한국의 경제성장을 고용·임금·분배가 없는 ‘3무(無) 성장’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복지나 재분배는 2차적 얘기라며 한국에서는 고용과 임금을 통한 1차적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아예 주지도 않고 재분배를 얘기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정책으로 해야 한다. 한마디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늘려주면 되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서 임금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또 하청업체들의 임금이 원청기업의 50%도 안 되는데 그걸 정책으로 깨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부는 다 어디로 갔을까? 장 교수는 기업이 배분하지 않고 내부에 가지고 있는 것, 즉 사내유보의 몫으로 대부분 들어갔다고 분석한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실질 국민총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3.5%였는데, 실질 기업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7.5%였다. 그리고 기업이 차기로 이월하는 이익잉여금은 2004년 당기순이익의 100%정도였다가 2011년에는 311%로 세 배가 늘어났다.
장 교수는 “기업은 소비 주체가 아니고 투자 주체인데, 투자도 안 하고 그냥 돈을 쥐고 있다”며 “소비의 성장 기여도가 투자보다 훨씬 큰데, 정부가 소비를 촉진시키는 정책에는 관심이 없고 투자 촉진에만 열을 올리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이 책을 2011년 늦여름 집필하기 시작했고, 2012년 9월 안철수 대선후보 캠프 참여 전 원고의 상당 부분을 완성했다. 비정규직 문제, 사내 유보금 과세 등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자연스레 안 후보 캠프에서 중요하게 논의됐다. 그는 ‘정의로운 경제’라는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대통령을 만드는데 실패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분야에서는 진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했었다고 한다.
“다른 건 몰라도 경제민주화는 진전될 줄 알았다. 본인이 오랫동안 준비했고, 전격적으로 구호를 들고 나왔으니까. 그래서 지금 너무 실망스럽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 번도 그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한국 자본주의’ 저자 장하성 교수 “한국의 불평등은 노동분배가 너무 적은 것이 원인”
입력 2014-09-19 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