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담뱃값 인상의 전제조건

입력 2014-09-18 03:32

현재 한국 남성의 흡연율(19세 이상 성인)은 43.7%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흡연율(26%·15세 이상 남성)의 두 배 수준이다. 최근 정부가 국민건강을 위해 이 흡연율을 최소 8% 포인트 이상 낮춘다는 명분을 내세워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하는 내용의 관련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논란이 일고 있다.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낮추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 결과와 해외 사례를 통해 입증됐다. 담배 가격에 민감한 청소년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담뱃값이 10% 오르면 담배 소비량이 성인의 경우 2∼6%, 청소년은 약 13%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고가 있다. 요즘 금연운동가들이 2000원 인상도 적다며 담뱃값을 6000∼8000원선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한 해 동안 담배를 통해 거두는 세수는 2013년 기준으로 약 6조8000억원에 이른다. 담뱃값이 정부안대로 2000원 오를 경우 여기에 연간 2조8300억원이 더 보태지게 된다. 무려 10조원에 이르는 재원이 매년 담뱃세로 조성되는 셈이다.

담뱃값을 올리는 목적은 세수 확대가 아니라 급증하는 흡연율을 억제하기 위함이다. 과연 우리 정부는 그동안 이 돈을 제대로 사용한 것일까. 담뱃세 중 금연 치료와 흡연예방 사업 지원 비율은 1.2%밖에 안 된다. 흡연자들로부터 담뱃값의 60% 이상을 담뱃세로 챙겨가면서 정작 흡연자들 건강을 챙겨주는 데는 돈을 거의 쓰지 않는 것이다. 담뱃세로 조성된 재원은 애초 목적대로 흡연자와 가족, 그 이웃들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데 사용돼야 한다. 지금처럼 대부분을 흡연자의 건강증진과 무관한 분야에 쓸 일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니 흡연자의 주머니를 털어 모자라는 복지재원을 충당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는 거다.

사실 정부가 발표대로 국민건강 증진과 흡연율 감소가 목적이었다면 담뱃값을 올리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지방세, 교육세 등의 비율을 낮추고 대신 쥐꼬리만큼의 국민건강증진부담금 비율을 대폭 올리는 쪽으로 담뱃세 구조를 개편하는 것은 그중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 돈으로 금연상담 및 교육과 치료, 흡연예방 사업 등을 지원하면 흡연율 감소라는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물론 담뱃값 인상과 함께 이 방법을 병행하면 그 시기는 더욱 앞당길 수 있겠지만 말이다.

담뱃값이 오르는데도 여전히 건강에 좋지 않은 담배를 줄이거나 끊지 못하는 것은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를 필요로 하는 중독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담뱃값 인상으로 세수가 는다면 그 돈은 전적으로 흡연자의 90%에 이르는 니코틴중독자들로 하여금 담배를 끊게 하는데, 그리고 흡연으로 인해 생긴 질병을 치료하는 데 쓰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국립암센터 명승권 박사는 “자신의 의지만으로 6개월 이상 금연에 성공할 확률은 3∼4%에 불과한 반면 의사로부터 충고와 상담을 받으면 금연 성공률이 6∼12%(평균 8%)까지 높아진다”고 말한다. 이 성공률은 금연 전문가와 개별적으로 금연 상담을 할 경우 11%, 여기에다 금연보조제(니코틴패치·껌·사탕)를 활용하면 17%, 금연 약까지 복용하면 26∼32%까지 올라간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담뱃세 인상을 서둘지 말자. 그 전에 담뱃세 중 흡연자들의 금연 치료를 돕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재원으로 활용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 비중을 대폭 키우는 작업을 먼저 하자. 그게 담뱃세의 기여자 및 수익자 부담 원칙에도 맞는 정책이라고 본다.

솔직히 말해 금연정책이 세월호법이나 잇단 군기사고 근절 노력보다 더 다급한 과제도 아니잖은가. 흡연자들이 건강 손실의 위험을 무릅쓰고 쾌척하는(?) 게 이른바 담뱃세다. 가능한 한 금연 치료와 흡연예방 사업을 위해 담뱃세가 쓰일 수 있도록 담뱃세 구조부터 먼저 뜯어고치길 바란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