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정확히 5개월이 되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로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를 불러들였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 등 참석자들의 발언을 보면 사실상 ‘세월호 정국의 종언’을 선언하는 자리다. 박 대통령은 물론 참석자 어느 누구의 가슴에도 노란 리본은 보이지 않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0일 캐롤라인 케네디 미국대사 등 도쿄에 주재하는 여성 대사 14명을 총리관저로 초청, 오찬을 함께했다. 아베 총리의 왼쪽 가슴에는 파란 리본이 선명하게 보였다. 아베 총리는 주요 행사에서 항상 파란 리본을 착용한다. 지난 2월 미·일 정상회담 후 가진 특별강연에서는 이 파란 리본을 가리키며 “북한이 납치해간 일본인을 반드시 송환하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파란 리본은 ‘파란 하늘을 보며 재회의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의미다. 납북자 송환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아베 가슴의 파란 리본
‘노란리본달기’ 캠페인은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 인터넷 등을 통해 확산됐다. 간절한 무사귀환 소망과 함께 유가족들의 슬픔을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상당수 국민들이 동참했다. 장관 등 공무원들도 대거 참여했다. 여야 정치인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리본을 달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정홍원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제외)의 가슴에서 노란 리본이 사라졌다. 김 대표 등 여당 지도부도 최근 리본을 떼어냈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지난 5월 30일 의장 취임 후 주요 행사에서 착용했던 리본을 요즘엔 달지 않고 있다. 세월호를 내려놓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느낌이다.
아직도 실종자 10명은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비탄에 빠진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은 27일째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을 위해 국회본청 앞에서 68일째, 광화문광장에서 66일째 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없이 슬픔에 빠져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특별법 때문에 경제가 침체되고 국회가 멈추길 바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세월호 참사가 잊혀져서는 결코 안 된다. 교훈을 삼고, 다신 이런 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사고 원인을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한다.
잊혀져 가는 세월호
박 대통령은 참사 이후 단 한 차례도 노란 리본을 달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의상에 배지나 브로치 등을 잘 달지 않는다는 게 청와대 측 설명이다. 하지만 가슴 속에는 리본을 단 심정이었을 것이다. 팽목항에 직접 내려가고, 합동분향소를 찾아가 아픔을 함께했다. 대국민 사과를 할 때는 눈물을 흘리며 유가족은 물론 국민을 위로하지 않았던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5개월이 지나도록 사실상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유가족들만 지쳐서 기력을 잃고, 점차 쓰러져 가고 있다. 야당은 지리멸렬해 제대로 대응할 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더 이상 협상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이제 그만 끝내자’고 강경하게 몰아붙이고 있다. 여당 지도부는 대통령 앞에서 뜻에 따르겠다고 다짐했다. 국회의장도 세월호 특별법을 일단 제쳐두고 정기국회 의사일정을 직권 결정하며 화답했다. 섬뜩하고 매몰찬 어떤 흐름이 느껴진다.
지난달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노란 리본을 단 채 미사를 보고, 유가족을 어루만졌다. 국민들은 이런 따뜻함을 우리 대통령, 우리 정치 지도자들에게서도 느끼고 싶었을 게다. 설마 대통령 가슴에서, 국회의장과 총리 및 국무위원들 가슴에서, 집권여당 지도부의 가슴에서 노란 리본이 완전히 지워진 것은 아니겠지.
오종석 정치부장 jsoh@kmib.co.kr
[데스크시각-오종석] 박대통령엔 없는 노란 리본
입력 2014-09-18 0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