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은 전통적인 한국의 메달밭이었다. 먹고살기 힘든 1960∼70년대 맨주먹으로 세계챔피언을 꿈꿨던 그 시절 젊은이들이 복싱도장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은 1986 서울아시안게임 당시 ‘헝그리 스포츠’의 대표격이던 복싱에서 12개 전 체급을 석권하며 황금기를 맞는다. 역대 아시안게임에 걸린 금메달 총 167개 가운데 한국은 3분의 1이 넘는 56개를 쓸어담았다. 하지만 이후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굶어가며 운동해야 하는 복싱에 입문하려는 선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이시안게임에서는 2002년 부산대회 이후 단 한 개의 금메달도 따내지 못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복싱의 희망’ 김형규(22·한국체대)가 끊겨있던 금맥을 이을 선두주자로 나섰다. 김형규는 인천아시안게임 복싱 81㎏급에 참가하는 선수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펀치를 자랑한다.
그는 지난달 중국 구이양에서 열린 차이나오픈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과시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6강전부터 결승까지 4경기 가운데 2경기를 KO로 끝냈다. 유럽과 아시아의 정상급 선수들이 대거 참가한 대회였다. 국내 대회에서는 그의 주먹이 두려워 링 위에 오르기를 포기하는 선수가 있을 정도로 적수가 없는 상황이다. 파워, 체력, 판단력의 삼박자를 갖춘 것이 그의 장점이다.
한국 복싱이 그를 금메달 후보로 꼽는 데는 지난해부터 바뀐 대회 규정을 들고 있다.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AIBA)은 지난해 6월부터 국제대회에서 성인남자선수들은 헤드기어를 벗고 경기를 치르도록 결정했다. 헤드기어를 벗겨 화끈한 경기를 유도해 침체된 아마복싱의 인기를 되살리겠다는 의도다. 이번 대회는 헤드기어 없이 치러지는 첫 번째 아시안게임이다.
채점방식도 기존 ‘유효타 숫자’에서 ‘우세승’으로 바뀌었다. 유효타가 적어도 더 강한 펀치를 적중시켰다면 라운드당 10점을 부여한다. 맷집과 펀치가 뛰어나고, 공격 성향을 갖춘 김형규는 이같이 바뀐 규정에 가장 빨리 적응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김형규는 기본적으로 아웃복서다. 빠른 풋워크로 상대 주위를 돌며 끊임없이 상대를 괴롭히는 선수다. 그러다 기회가 오면 인파이팅으로 변신해 난타전에도 능하다. 그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잡는다는 게 박시헌 대표팀 감독의 귀띔이다.
하지만 김형규의 금메달 전선에 넘어야 할 큰 장애물이 있다. 카자흐스탄의 아딜벡 니야짐베토프(25)다. 김형규는 2011 바쿠세계선수권 32강전에서 니야짐베토프에 판정패를 당한 적이 있다. 홈에서 치러지는 종합대회에 복수전을 펼치기 위해 김형규는 휴식 시간이면 노트북 컴퓨터에 모아놓은 니야짐베토프의 경기 영상을 수시로 돌려보며 분석에 여념이 없다.
김형규는 17일 “제 오른손 어퍼컷 한 방에 걸리기만 하면 누구든지 KO시킬 자신 있다”면서 “내가 죽든 그가 죽든 둘 중 하나는 링 위에서 죽는다는 각오로 대회에 임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
[인천의 ★! 그대-⑧ ‘한국 복싱의 희망’ 김형규] “내 오른손 어퍼컷에 걸리면 누구든 KO”
입력 2014-09-18 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