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하루 간격으로 발표된 담뱃세와 지방세 인상의 여파가 심상치 않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 세금은 조만간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강조해 왔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복지 확대에 필요한 재원조달 계획을 담은 공약가계부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대규모 세수 결손이 예상되고 내년 예산을 최대한 확대 편성하게 되면서 이 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추가적인 세입 확대 없이도 과연 복지 확대와 내수 활성화 정책이 온전히 진행될 수 있겠는가.
발등의 불을 급히 꺼야 하는 정부가 빼어든 카드는 담뱃세 인상이었다. 복지 디폴트까지 언급하는 지방정부를 달래기 위해 주민세·자동차세 등의 지방세도 함께 인상한다고 입법예고했다.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명분과 논리도 준비해 두었다. 담배가 주는 개인적·사회적 유해성을 줄여야 하고, 오랫동안 고정된 주민세 수준을 정상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민건강을 염려해 대책을 마련하다 보니 자연스레 증세가 동반되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정부가 주장하는 바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번 조치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증세로 불리는 것이 마땅하다. 2조8000억원 규모의 담뱃세 증세가 미필적 고의에 의한 것이라니, 입맛이 쓸 뿐이다.
정부는 언론에 의해 이미 우회증세나 서민증세로 낙인찍힌 이번의 세금인상 조치가 단순히 세 부담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이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국민들의 시선이 차갑게 변하게 된 첫째 이유는 바로 정부에 대해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어느 때보다 이번 증세 조치는 국민에게 사전에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했다. 정부가 수차례 단언한 무증세 원칙을 어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보인 행동은 국민건강의 당위성과 세제 정상화 필요성만을 반복한 것뿐이다. 많은 국민들이 실망을 금치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정부의 책임 회피에 있다. 지방세 수입까지 합해 연 4조3000억원의 세금을 더 걷히게 된다는 것이 이번 조치의 산술적 결론이다.
국민에게 이렇듯 큰 부담을 초래하는 중요한 정책을 8월의 정부 세법개정안에서는 언급도 하지 않고 추석연휴 직후에 복지부의 금연대책과 안행부의 지방세 정상화 조치로 전격 발표한 것은 상식 밖이다. 또한 언제부터 담배 개별소비세와 같은 새로운 세목 설치가 복지부의 업무가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지방세의 경우도 실무 담당 부처는 안전행정부라지만 전체 조세정책의 컨트롤타워는 바로 기획재정부가 아니었던가. 조세정책의 실질적 책임자들이 이번 정책에서 한 발 물러서 있는 것은 국민에게는 명백한 책임회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이제라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할 수만 있다면 아직 늦은 것은 아니다. 복지 확대는 국민들도 동의한 것이다. 또한 증세 없이 복지 확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정부가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증세의 규모와 방법을 정한다고도 밝힌 적이 있다. 이제 정부는 무증세의 깊은 자기 최면에서 깨어나야 한다. 국민도 인내와 지혜를 발휘해 막다른 골목에 처한 정부에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 증세에 대한 집단적 히스테리는 그만 중지되어야 한다. 대신 정부는 국민에게 필요한 재원의 규모를 솔직히 제시하고, 국민이 감당해야 할 세 부담의 적정 수준을 밝혀야 한다.
늘어날 세금을 경제 부문별, 또는 계층별로 어떻게 분담할지의 어려운 문제는 국민 스스로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시간이 걸리는 힘든 작업이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국민적 동의 없는 세제란 허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국민은 현명하기에 이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지방세를 합리화하고 금연대책을 위한 담뱃세 인상으로 의견을 수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건강이나 세제 정상화란 구호는 바로 이러한 때 진정한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
[시사풍향계-김우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증세
입력 2014-09-18 0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