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인사이드] 박영선, “독배 마시겠다”던 각오가 현실로… 계파 정치에 희생? 자충수?

입력 2014-09-17 03:32 수정 2014-09-17 16:16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2004년 정계 입문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박 위원장은 지난 8월 초 비대위원장을 수락할 당시 "다들 독배를 마시라고 하니 마시고 죽겠다"며 결의를 다졌는데, 진짜로 독배를 마신 셈이 됐다.

박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을 맡기 전까지만 해도 야당 정치인으로서 승승장구했다. 정계 입문 직후 열린우리당 대변인으로 발탁돼 내리 3선을 하는 등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특히 지난 5월 제1야당 첫 여성 원내대표에 당선되면서 잠재적인 대권 주자로까지 본격 거론됐다. 원내대표 선거 당시에는 비노무현계, 초·재선 강경파, 호남권 및 중도파 등의 지지를 고루 얻었다. 계파 없이 실력으로만 쌓은 결과였다.

당 안팎에서는 최대 권력기관인 검찰 및 국가정보원과 싸워 온 정치이력, 재벌개혁에 앞장선 부분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에는 민주당 후보로서 '안철수 신드롬'을 등에 업은 무소속 박원순 후보에 맞서며 대중적 인기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투쟁력과 대중적 인기를 동시에 갖고 있는 박 위원장은 현재 백척간두의 상황에 몰렸다. 16일까지 사흘째 잠적이다. 당내에서는 이미 탈당 여부와 상관없이 잠룡으로 분류되던 정치적 위상이 급격히 추락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을 종합하면 박 위원장은 두 차례에 걸친 세월호 특별법 협상 실패,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비대위원장 영입 실패로 일종의 '삼진 아웃'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놓고 "당의 소중한 자산이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는 옹호론과 "스스로 초래한 자충수"라는 비판론이 엇갈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 위원장 측은 계파 이기주의를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파동에서 박 위원장을 보호하는 세력은 없다. 박 위원장 측 관계자는 "계파 수장들이 겉으로는 돕겠다고 하면서 뒤에 가서는 딴소리를 했다"며 "우리를 죽이겠다고 덤벼드는데 우리가 그냥 죽는 게 맞느냐"고 말했다. 반면 박 위원장의 당직 사퇴를 요구하는 측은 "측근 몇 명과 상의해서 일을 처리했다"며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박 위원장이 너무 조급했던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박 위원장이 조직강화특위를 앞두고 당 조직 장악 시도를 보였고, 지역위원장에 가까운 인물을 꽂으려고 하자 위기감을 느낀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원조 강경파'로 불린 박 위원장이 세월호 특별법 논의에서 갑자기 중도 노선으로 '변침'하면서 초·재선 강경파와 충돌한 것도 대부분 예상치 못한 일이다. 일각에서는 대권 플랜을 너무 일찍 가동했다는 시각도 있다.

박 위원장은 현재 정치를 계속해야 할지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동료 의원들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 위원장 정도의 커리어를 쌓은 정치인이 탈당이라는 극단적 결정을 내리는 것은 비상식적으로 보인다. 야권 전체로도 손실이다.

때문에 새정치연합과 박 위원장 모두 퇴로를 열어 두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탈당 논란이 봉합되더라도 박 위원장은 원내대표 당선 때까지 쌓은 당내 기반을 상당 부분 잃었다는 평가다. 여전사로 불려 온 박 위원장의 정치적 앞날은 가시밭길이 될 전망이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