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들과 전국 17개 시·도가 손잡고 창의적 벤처기업을 지원할 지역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삼성과 제휴해 문을 연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참석해 “애플, 구글, 아마존의 창업자들도 작은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며 “혁신적 아이디어가 기술로, 제품으로, 비즈니스로 발전하는 ‘꿈의 차고’가 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벤처기업들이 대기업으로부터 기술과 상품 개발, 판로, 해외시장 진출을 지원받도록 하겠다는 정부 구상은 장점이 적지 않다. 상당수 벤처기업들이 자본과 마케팅 능력이 부족해 창업 후 ‘데스밸리’(Death Vally·벤처가 창업 후 경영난을 겪는 시기를 비유한 말)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자본과 경험이 풍부한 대기업들이 지원한다면 창업 초기 실패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설립된 구글의 자회사 구글벤처스는 지난해까지 150여곳에 투자했다.
벤처기업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대기업의 자본력이 만나 상생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구글이 내년 초 창업 지원공간 ‘구글캠퍼스’를 서울에 설립하고 이스라엘 요즈마펀드가 1조원을 투자키로 하는 등 우리나라의 높은 IT 잠재력은 외국에서도 눈여겨보고 있는 터다. 벤처·중소기업 육성을 통해 창조경제 생태계를 조성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대기업을 끌어들여 줄 세우는 것부터 전혀 ‘창조적’이지 않다. 역대 정부의 대기업 지역할당제나 혁신도시, 기업도시와 다를 게 뭐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프로야구의 프랜차이즈 할당하듯 대기업을 지역별로 분담해 경쟁시킨다고 해서 창업·벤처기업들이 지속적으로 탄생하고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질지도 의문이다.
수익을 좇는 게 기업의 생리인데 실패하든 말든 대기업에만 무한책임을 떠맡으라는 것은 또 다른 관치의 횡포다. 구글이나 애플이 벤처기업들을 인수하는 것은 정부 독려 때문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대기업들이 시늉만 낼 경우 단기적인 전시성 사업으로 흐르지 않을까도 걱정이다. 이명박정부가 추진했던 녹색성장사업이나 미소금융사업처럼 정부가 바뀌었다고 흐지부지되지 말란 보장도 없다.
벤처기업들이 커나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주려면 공정한 시장 룰이 작동하는 환경을 만들고 대기업들의 횡포부터 없애는 게 먼저다. 우리나라 벤처·중소기업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데는 아이디어와 기술, 우수한 인재를 탈취하는 대기업들의 탐욕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창업자금을 손쉽게 조달하고 도전했다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1% 성공 가능성에 도전하는 기업들이 많이 나와야 창조경제가 번성할 수 있다.
[사설] 대기업만 앞세워선 창조경제 정착 어려워
입력 2014-09-17 03:32 수정 2014-09-17 07:39